10년 기다린 비트코인 ETF의 등장…승자와 패자는 누가 될까[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4. 1.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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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증시에 역사적 신상품이 등장했다는 소식, 들으셨죠. 바로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2013년부터 10년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해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0일 마침내 이를 승인한 건데요.

‘드디어 비트코인이 제도권에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는구나’라는 감탄은 잠시뿐. 비트코인 시세는 이후 10% 떨어졌고, 투자자 관심은 벌써 ‘다음 ETF 후보는 무엇일까’로 넘어갔죠. 역시 시장은 빠릅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한번 찬찬히 짚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일으킬 효과를 다각도로 들여다봅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향한 긴 여정이 끝났다. 미국에선.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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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품인가

미국 증시에 지난 11일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한꺼번에 상장됐습니다. 블랙록·피델리티·아크인베스트 같은 유명 운용사들 상품이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ETF에 이틀(11일, 12일) 동안 순유입(매수-매도)된 금액은 무려 8억1900만 달러(약 1조800억원). ‘출시 몇 주 안에 수억 달러가 유입될 것’이라던 보수적인 언론 예측을 크게 웃도는 실적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뭐냐고요?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일반 주식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입니다. 투자자는 업비트·빗썸 같은 코인 거래소를 통할 필요도,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wallet)에 보관할 필요도 없죠. 비트코인을 실제로 소유하는 건 ETF 운용사입니다. 대신 매일(주말 포함)의 비트코인 시세를 ETF 가격에 반영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사실상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효과이죠.

어차피 수익률에 차이가 없다면 사람들은 왜 비트코인 실물이 아닌 ETF에 투자할까요. 금 실물 대신 금 ETF를 사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원래 쓰던 주식계좌를 통해 사고파는 거 훨씬 더 익숙하고 간편하죠. 게다가 2022년 파산한 FTX나 얼마 전 유죄를 인정한 바이낸스 같은 못 미더운 거래소보다는 대형 증권사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적어도 해킹이나 사기로 고객이 산 비트코인이 사라져 버릴 일은 없을 테죠.

2020년 이후 비트코인 가격. 2021년 최고가를 찍은 뒤 폭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가을 현물 ETF 출시 기대감이 커지면서 다시 뛰었다. 코인마켓캡 화면 캡처

10년 걸렸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누구인지 모를 인물이 비트코인을 처음 발행한 게 2009년. 비트코인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가상화폐 제왕’입니다. 하지만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이어진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줄줄이 거부했죠. ‘사기와 시장조작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요. 지난해 8월 SEC가 그레이스케일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하면서(‘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 거부는 잘못’이란 판결) 10년의 줄다리기가 끝납니다. 물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ETF 승인 직후에도 “(ETF가 아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굳이 강조했지만요.

그럼 10년 만에 가상자산 업계가 거둔 이 승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마디로 판이 확 커집니다. 제도권 기관투자자가 이제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으로 인정하고 담을 테니까요. 미래에셋증권 디지털자산TF 이용재 선임매니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투자자에 치우친 반쪽짜리였습니다. 이젠 자산운용사·증권사·은행·보험사·연기금·공제회를 중심으로 비트코인 ETF에 투자하려 나서겠죠. ‘본격적인 기관투자자 시장이 개화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약입니다.”

이미 스탠다드차타드는 올해 안에 500억~1000억 달러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될 거라는 예상을 내놨죠. 미국에 등록된 투자자문사(RIA) 운용자금 중 0.1%만 비트코인 ETF로 들어와도 1120억 달러가 될 거란 계산도 나옵니다.

단순히 돈이 아닌 지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조지타운대학 제임스 엔젤 부교수는 FT 인터뷰에서 이를 한때 술 판매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비유하는데요. “(술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존경할 만한 투자공간 밖의 무법자로 여겨졌는데 이젠 올드보이 클럽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아울러 그는 이렇게도 덧붙입니다. “월스트리트는 물건을 파는 데 정말 능숙해요. 돈을 벌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팔아치우죠.”

비트코인은 이제 ‘디지털 금’의 지위를 갖게 된 걸까. 게티이미지

한국은 왜?

‘한국의 미국 비트코인ETF에 대한 경고가 주식에 타격을 입혔다.’

12일 블룸버그는 이런 기사를 썼죠. 전날 한국 금융위원회가 ‘(국내 증권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가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밝히자, 가상자산 관련주 주가까지 흔들린 건데요. 14일 다시 낸 입장자료에서 금융위는 살짝 톤을 누그러뜨리긴 했지만(‘미국 사례를 우리가 바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 이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 증권사는 판매하지 말란 입장은 유지했습니다.

사실 이건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금융위가 근거로 든 정부 입장이라는 게 6년도 더 전인 2017년 12월 13일 대책회의에서 나온 거니까요.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7년 이후 다른 나라는 가상자산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려고 나서는데 한국은 달라진 게 없다”라며 “한국은 규제가 심한 게 아니라, 아예 생겨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동안 뭐 하고 있었냐는 거죠.

현실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은 가상자산 투자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하죠. ETF 투자에도 아주 익숙하고요.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있지 않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조치는 국내에 앞으로 조성될 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아직 국내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미국 ETF로 자금이 대거 쏠릴까 봐 일단 막았을 거란 겁니다.

따져보면 한국 투자자가 미국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건 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환전 수수료도 들고, 차익을 거두면 22%를 세금으로 떼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가상자산 과세가 2025년으로 미뤄져 있으니(올해까진 양도소득세 없음), 올해 안에 사고팔 생각이라면 그냥 비트코인 실물에 투자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사토시는 과연 좋아할까

‘비트코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 2008년 10월 나카모토 사토시가 공개한, 이후 세계를 뒤흔든 비트코인 백서의 제목이죠. 이 백서엔 ‘어떤 금융기관도 거치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달되는’ 전자화폐라는 비전이 담겼습니다. 탈중앙화와 분권화. 그게 바로 비트코인의 정체성이었죠.

그런데 지금의 비트코인 ETF는 어떤가요.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가 관리하는 금융시스템에 비트코인을 편입시켜 버렸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나카모토 사토시는 이것(비트코인)이 분산형 시스템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중앙화로 이어졌다”면서 “이게 (비트코인 현물 ETF의) 아이러니”라고 꼬집습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ETF의 등장은 월스트리트의 비트코인 점령을 뜻하는 걸까요. 전통 금융을 ‘비트코인의 적’으로 보는 시각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전통 금융과의 협력 내지 혼합은 비트코인이 주류로 가기 위해 불가피한 길이라는 현실주의자가 당연히 더 많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코인데스크 칼럼니스트 JP 코닝은 “처음부터 이상적인 ‘비트코인주의’조차도 항상 돈을 벌려는 욕구와 짝을 이뤘다”며 “비트코인과 전통 금융과의 긴밀한 통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분산화된 대안 금융’은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트코인이 추구하는 바였다. 게티이미지

두 갈래 시장

두 세계(비트코인과 전통 금융)의 융합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과연 자신의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에 직접 보관해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비트코인 ETF와 비트코인 실물, 둘 중 무엇이 더 ‘주류’ 내지 ‘대세’가 될까요.

물론 아직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 IT전문지 와이어드는 “시장은 사실상 투자용 비트코인과 이데올로기자들만 보유하는 비트코인, 두가지로 분리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투자로 차익을 거두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지갑에 실물로 보관해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지갑에 비트코인을 직접 보관해두려는 사람이 소수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P2P 거래 시장은 쪼그라들겠죠. FT가 “ETF로 인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보유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선택이었던 가상화폐 거래소”라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실제 미국 코인베이스 주가는 비트코인 ETF 승인 소식에 연일 급락세를 보였죠.

나의 디지털 지갑에 내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보관해두고, P2P로 거래한다는 개념.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게티이미지

다음 타자는 이더리움?

지난 11일 4만9000달러 선에 근접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후 급락해 15일 4만2000달러대에 머물러있죠.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현상인데요. 대신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총이 큰 가상화폐인 이더리움 가격은 비트코인 ETF 승인 직전보다 10%가량 올랐습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나왔으니, 이제 다음 현물 ETF는 이더리움일 거란 기대감 때문이죠.

자, 그럼 정말 이더리움 현물 ETF의 등장도 곧 이뤄질까요. 전문가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이세일 신한투자증권 블록체인부장은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명확한 차이점이 있어서 (현물 ETF 승인이) 빠르게 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데요. 비트코인과 달리 누가 만들었는지가 알려져 있다는 점(비탈릭 부테린이 창시자), 지분을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더 유리한 중앙화된 채굴방식(지분증명)이라는 점이 걸림돌입니다. SEC가 비트코인은 ‘상품’으로 취급하지만(증권이 아님), 이더리움은 ‘증권’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긴 한 거죠.

이 부장은 “이더리움 ETF가 나올 수 있느냐는 올해 리플과 SEC의 소송 결과에 달렸다”고도 덧붙입니다. 리플은 또 다른 가상화폐인데요. 이 소송에서 법원이 리플(XRP)에 대해 증권성 없다고 판결한다면 이더리움도 덩달아 면죄부를 받을 거란 뜻입니다. 이번에도 가상화폐 ETF의 운명은 미국 법원에 달려있습니다.

20년 전 금 ETF

디지털 금. 비트코인을 이렇게 일컫곤 하죠. 그래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금 ETF에 비교되곤 하는데요. 미국에 최초의 금 ETF ‘SPDR 골드셰어즈’가 상장된 게 20년 전인 2004년 11월입니다.

그래서 금 ETF가 상장되자 금값이 치솟았을까요?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반대였습니다. 금 ETF 출시 전 몇 달 동안 20% 넘게 올랐던 금값이 ETF 상장과 동시에 떨어졌습니다. 이후 직전 가격을 회복하는 데 300일이나 걸렸는데요.

중장기적으로 보면 다르다고요? 이후 만 19년 동안 금값은 5배 가까이로 급등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S&P500 역시 4배 상승했으니, 그리 엄청난 성적까진 아니고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 하겠죠.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중장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가상화폐 투자자 입장에선 살짝 실망스러울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조수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물 ETF 승인이 다른 자산군보다 아웃퍼폼(초과 성과)하는 걸 담보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비트코인에 투자하든,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든 높은 변동성에 노출된다는 점은 변함없다”는 그의 당부도 귀담아들으셔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초기 비트코인 신봉자들이 어떤 이상향을 꿈꿨는지 기억하시나요. 2014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마크 안드레센 칼럼(‘비트코인이 중요한 이유’)엔 비트코인의 쓸모로 이런 게 나열됩니다. 저소득 이주 노동자의 국제 송금, 은행 계좌 없는 이들을 위한 결제 서비스, 초소액 결제(예컨대 동영상 재생당 결제),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한 후원금 송금.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10년이 지나서 돌아보니, 참 순진하기 짝이 없군요. 과연 10년쯤 뒤엔 지금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각종 전망을 어떤 식으로 돌아보게 될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10년의 싸움 끝에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돼 나왔습니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에서도 명실상부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은 겁니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담기 시작하면서 판이 커질 전망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당분간 이를 살 수 없습니다. 금융위가 일단 막았기 때문인데요. 아직 한국에서 비트코인 ETF를 출시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미국에 시장을 내줄까봐서로 풀이됩니다.

-현물 ETF 출시로 비트코인은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탈중앙화, 분권화의 훼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대중화와 주류 편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ETF 출시로 장기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는 건 가상화폐 거래소일 겁니다. 다음 현물 ETF 후보 자산으로 꼽히는 이더리움은 최근 가격이 오르며 주목받았지만, ‘증권성’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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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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