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세계… 예술의 길도 정치의 길도 결국 ‘살 만한 세상’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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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바다 모래톱을 걸으며 모래의 무한한 시간에 대해 생각하던 때, 갈매기 한 마리가 머리 위를 선회하며 말을 던진다.
"소설가나 시인의 길도, 정치가의 길도 결국은 사람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예술작품의 도달점은 구원, 구제이다. 정말로 제 소설을 읽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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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따르는 게 사람의 길
그 길 벗어나면 벌레 전락
이 소설이 나의 최후의 길
작품 통해 구원 얻었으면”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고
에세이·동화·시 넘나들어
시인이 바다 모래톱을 걸으며 모래의 무한한 시간에 대해 생각하던 때, 갈매기 한 마리가 머리 위를 선회하며 말을 던진다. “산책을 아주 오랫동안 하시네요?”
“산책이라기보다는 내 삶 막판의 이삭줍기를 하는 것이네. 요즘은 이삭줍기가 내 사업이네.”(‘사람의 길’ 중)
원로 소설가 한승원(85)이 새 책 ‘사람의 길’(문학동네)을 냈다. “늙은 시인이 수집한 까치놀 같은 이삭” 줍기의 결과물이다. “누군가의 결핍으로 허기진 영혼을 구제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간 틈틈이 써온 글들을 엮었다.
장편소설로 분류돼 있지만 기승전결의 줄거리를 지닌 일반적인 소설 형식은 아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일화로 시작하는 책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동화와 병렬되는가 하면 작가가 과거 발표한 시나 미처 완성하지 못한 미공개 시구들이 끼어든다. 저자이자 화자인 한승원은 ‘나비 시인’ ‘율산’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자신의 분신들을 만난다.
최근 전화로 만난 작가는 이 같은 형식을 취한 이유를 묻자 추사 김정희를 이야기했다. “추사의 말년 글씨는 해서도 초서도 행서도 아닌데, 깊이 뜯어보면 해서이기도 하고 초서이기도 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내 늙바탕의 글쓰기 작업은 시, 소설, 동화, 에세이 형태를 자유로이 넘나들이할 터입니다. 소설적 유희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이 얽힌 한 권의 책을 통해 작가가 묻고 탐문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공자, 맹자가 이야기한 ‘어짊’(仁)과 석가가 이야기한 자비, 그리고 윤리를 따르는 게 사람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그 가르침의 길에서 벗어나면 벌레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길’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 인간이 만들고 살아가는 “광기 어린 야만의 세상”이다. “원로가 없는 세상, 길을 잃어버린 세상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치가 필요한 이유로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큰 것이 작은 것을 다 잡아먹지요. 야만의 세상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소설가의 책임은 무겁다. “소설가나 시인의 길도, 정치가의 길도 결국은 사람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예술작품의 도달점은 구원, 구제이다. 정말로 제 소설을 읽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현재 장흥의 ‘해산토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승원은 1968년 등단한 뒤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시집 ‘달 긷는 집’ 등을 펴냈다. 영국 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이 소설이 나의 최후의 길”이라고 말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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