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칼럼] 민주주의 위기 시대 ‘서울의 봄’·‘길위에 김대중’의 울림

한겨레 2024. 1. 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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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역사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300만명 가까이 관람했고, ‘길위에 김대중’은 다큐멘터리임에도 개봉 첫주에 6만명을 훌쩍 넘었다. 두 작품은 나란히 볼 때 더 짙은 울림을 준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길위에 김대중’에서 김대중은 단언한다. 민주주의는 쿠데타와 암살로 이룩할 수 없다고.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탁환 | 소설가

새해가 시작되고 보름이 지났다. 연초엔 덕담을 나누기 마련인데, 올해는 한숨과 걱정이 대부분이다. 오며 가며 만난 농민들, 책방지기들, 마을활동가들, 공무원들 중에서 밝은 전망을 제시하는 이는 없었다. 현상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도 드물고, 이런 식이라면 최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과 농어촌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들은 심각하게 후퇴했고 예산 역시 삭감되었다.

길이 없고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뒤돌아본다. 여기까지 무엇을 위해 누구와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짚으며, 앞으로의 여정을 새롭게 짜려는 것이다. 역사가 현재의 거울인 이유다.

두편의 역사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300만명 가까이 관람했고, ‘길위에 김대중’은 다큐멘터리임에도 개봉 첫주에 6만명을 훌쩍 넘었다. 두 작품은 나란히 볼 때 더 짙은 울림을 준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길위에 김대중’에서 김대중은 단언한다. 민주주의는 쿠데타와 암살로 이룩할 수 없다고.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소재로 삼았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비슷한 질문을 떠올린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인들을 민주공화국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1980년대를 통과한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문제이기도 했다. 대통령이 군사반란의 주모자인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영화를 통해, 이제 그 질문은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로 향한다.

‘길위에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의회주의자 김대중의 삶을 풍부한 자료화면 위에 유장하게 설명하는 작품이다. 청년 김대중은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삼자는 주장을 거듭 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방방곡곡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와 농민이 삶터의 현안들을 결정하는 주권자로 자리 잡기 바란 것이다.

다큐멘터리영화 ‘길위에 김대중’은 1924년 태어나서부터 1987년 민주화 때까지 김대중을 담았다. 그는 독재 시절 고문을 당해 지팡이를 짚게 됐다. 명필름 제공

민주주의를 부순 세력과의 대결도 촘촘히 담았다. 1970년대 김대중을 감옥에 가둔 이는 유신 세력이고, 1980년대 그를 내란음모의 수괴로 조작한 이는 12·12쿠데타 세력이다. ‘서울의 봄’에 등장한 바로 그 정치군인들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주의자들을 옥에 가뒀을 뿐 아니라, 재야인사들 석방을 요구한 광주시민들까지 무력으로 진압했다.

‘서울의 봄’을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고 일어나 영화관에서 나왔다는 동년배를 여럿 만났다. 영화의 높은 완성도가 그 시절의 암담함을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되 현재를 이야기한다. 역사의 깊이를 새삼 느낀 다음에는, 되돌아서서 미래를 향해 첫걸음을 떼야 한다. 여기가 맨 앞인 것이다. ‘서울의 봄’과 ‘길위에 김대중’이 널리 사랑받는 것은 작금의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서이다. 연초에 우리가 먼저 쥐고 고민할 화두는 두가지다.

첫번째 화두는 ‘암살’이다. 해방공간에서 백범 김구를 비롯한 중요한 정치인들이 암살되었다. 민주주의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제거할 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논의하고 타협하며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1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암살 시도는 민주공화국이라는 틀 자체를 부정하는 범죄다. 공화국 시민이 어떻게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는가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지 말고, 낱낱이 사실을 확인하고 과정을 따져야 한다.

두번째 화두는 ‘참사’다. 1월9일 이태원참사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8년 만에 수도 서울의 거리를 걷던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들이 한겨울에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에 나설 만큼, 답을 얻지 못한 물음들이 아직 많다.

대통령이 이태원참사특별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인지를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루빨리 특별법이 시행되는 것이 옳지만, 난관이 생기더라도 참사의 진상이 영원히 묻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1979년 겨울밤 누가 비열했고 누가 올곧았는가를 훤히 밝힌 ‘서울의 봄’과 사형수로까지 내몰린 정치인의 회생을 웅변하듯 다룬 ‘길위에 김대중’이 이를 증명한다. 잠시 가리고 입막음할 수는 있어도, 역사의 빛은 기간과 횟수를 제한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위기였던 때를 거듭 비출 것이다. 거기, 막막한 시절을 정직하게 견딘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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