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곳간 대책 없이…윤 대통령 “부담금 원점 재검토하라”

박종오 기자 2024. 1.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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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부담금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건 기존 부담금의 폐지·축소 등을 통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이유에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해외여행객에게 국내 관광 촉진 목적으로 1만원씩 물리는 출국 납부금 등 이해관계가 멀어 보이는 부담금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 부담금은 이미 합헌 판정을 받는 등 법적 근거가 있는 게 많다"며 "불합리한 부담금은 없애는 게 맞지만, 기금 수입이 없어지는 만큼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려면 재원 대책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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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개 부담금 중 87개 구조조정 방침
기금 수입 감소 상쇄할 대책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부담금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건 기존 부담금의 폐지·축소 등을 통해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이유에서다. 현실과 동떨어진 불합리한 부담금의 정비는 필요하지만, 이로 인해 줄어드는 정부 수입을 충당할 재원 대책이 빠져 재정 악화를 부채질하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밝힌 부담금 전면 개편 방침은 기획재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도 담긴 내용이다. 기재부는 “국민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도록 91개 부담금을 원점 재검토해 경감 방안을 마련하고 남설 방지 등 관리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방안은 건설사 투자 여건 개선책의 하나로 제시됐다. 애초 기업 지원을 위한 규제 완화 쪽에 무게를 둔 정책이라는 의미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서 해당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부담금관리기본법’과 각 법률에 근거를 두고 거두는 것이다. 공익 목적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선 세금과 비슷하지만, 부담금은 특정한 사업 경비를 이해관계자에게서 징수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걷는 전체 부담금 수는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한 2001년 101개에서 현재 91개로 소폭 줄었다. 반면 전체 부담금 납부액은 2001년 6조8천억원에서 2022년 22조4천억원으로 확대됐다. 지난해와 올해 정부가 계획한 부담금 징수 규모는 각각 21조8천억원, 24조6천억원이다.

기재부는 올해 전체 부담금의 운용 실태와 적정성 등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현재도 정부는 기재부 장관이 위촉한 교수·연구자·전문가 등 부담금운용평가단을 구성해 해마다 전체 부담금의 3분의 1씩을 점검·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단을 새로 구성하고 평가 기준도 재검토해 불합리한 부담금 폐지, 부과 요율 하향 등을 담은 부담금 개편 방안을 연내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개선 과제를 상시 발굴해 연말 이전에도 개별 부담금의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회원제 골프장 시설 입장료 부가금 등 기존 부담금 5개를 통합·폐지하는 내용의 부담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전체 부담금 91개 중 4개를 뺀 87개가 정부의 구조조정 도마 위에 오를 예정이다.

줄어드는 부담금 수입을 어떻게 만회할지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담금 납부액이 귀속되는 정부 기금과 특별회계의 여유 재원을 활용할 것”이라고만 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여유 재원이 남을지 추산하지도 않은 채 혹시 남는 돈이 있다면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해외여행객에게 국내 관광 촉진 목적으로 1만원씩 물리는 출국 납부금 등 이해관계가 멀어 보이는 부담금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 부담금은 이미 합헌 판정을 받는 등 법적 근거가 있는 게 많다”며 “불합리한 부담금은 없애는 게 맞지만, 기금 수입이 없어지는 만큼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려면 재원 대책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준조세’나 ‘그림자 조세’로 악용되는 부담금이 도처에 남아 있다”며 재계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준조세)를 콕 짚어 언급한 것도 논란거리다. 기재부가 펴낸 ‘부담금운용종합보고서’를 보면 “기업은 세금 이외의 모든 비용을 준조세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법률에 의거해 부과되는 부담금은 준조세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막연하게 준조세라고 통칭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써 있다. 행정조직 수장이 스스로 부담금을 준조세라 칭하며 납부자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얘기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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