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비 "대격변 패치, 베테랑에 불리…조용한 젠지? 걱정 없다" [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젠지e스포츠 '쵸비' 정지훈 인터뷰
"그동안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노하우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 같아요"
젠지e스포츠의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은 2024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개막을 앞두고 적용된 일명 '대격변' 패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맵 자체가 바뀌면서 무빙이나 포지셔닝 같은 부분에서 더 부담감이 커졌다"라며 "경험으로 체득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베테랑들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변화인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정지훈은 지난 2022년 LCK 서머 스플릿부터 2023년 서머까지 3번 연속으로 LCK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의 영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했던 그는 2023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8강에서 탈락하며 아쉽게 한 해를 마무리했다. 정지훈 역시 "당연히 롤드컵이 가장 아쉬웠다"라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2024년을 앞두고 젠지는 '기인' 김기인, '캐니언' 김건부, '리헨즈' 손시우 등을 영입하며 다시 한번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지훈은 "잘 하는 선수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잘해야겠다"라며 "목표는 역시 우승"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되는 게임 내적인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걱정이 없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라며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LCK 스프링과 서머 시즌을 모두 우승했다.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도 참가했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냈다. 2023년을 보낸 소감이 궁금하다.
2023 시즌 정말 많이 바빴던 한 해였다. 성적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마무리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무리가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아무래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이었나?
당연히 월즈(롤드컵)가 가장 아쉬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대회인데 결국 거기서 기대치에 못 미친 모습을 보인 게 불만족스럽다.
아픈 질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롤드컵 8강에서 중국리그 LPL의 빌리빌리 게이밍(BLG)에게 패배한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경기를 맞붙었던 상대팀보다 못해서 졌다고 생각한다. 전략적으로도 준비가 밀렸기 때문에 졌다고 본다. 롤이라는 게임이(다전제에서) 총 5판을 치르는데 5판 다 운이 개입될 순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대회 준비나 실력적으로 못해서 졌다고 생각한다.
조금 디테일한 부분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당시 1,2세트 때 오리아나를 상대로 아지르를 택했으나 패했고 이후 방향을 틀었다. 3세트부터 요네, 아칼리로 선회하며 2 대 2까지 따라붙었는데 2세트 패배 이후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일단 아지르, 오라니라 구도를 하면서 느낀 건 연습경기만큼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리아나가 궁극기를 서로 교환하면서 영향력을 줄이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지르보다는 아칼리나 요네 같은 챔피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원래 사일러스를 가장 하고 싶었는데 계속해서 금지가 됐다. 사실 1세트 때도 아칼리나 요네 같은 챔피언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밴픽 과정에서 남은 게 아지르 뿐이었다. 2세트부터 바꿀 생각도 있었는데 미드 챔피언 순서가 5픽으로 밀리면서 상황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인가?
스프링 시즌 우승이 가장 기뻤다. 한 해 돌아보며 정리해 보자면 서머 때는 팀 적으로 자신감이 차 있었고 연습도 잘 됐다. 그래서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스프링에는 사실 강력한 우승후보도 아니었고 연습 때도 좋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런데 결승전을 치를 때 경기력이 잘 나와서 이긴 게 저희도 예상치 못한 우승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2022 LCK 서머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무관과 무관해져 기쁘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LCK를 3시즌 연속으로 제패했는데 첫 우승 이후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그전까진 결승전 무대에 오르면 좀 뭐라고 할까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우승을 하고 나니까 결승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재밌다고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 데뷔 초와 비교해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있다. 확실히 이전보다 로밍과 합류를 중시하는 것 같은데 이 같은 변화의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음...스타일 보다는 어떤 플레이가 더 정답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다. 제가 최근에 느낀 건 데스가 좀 늘었다. 물론 의미 없는 데스는 줄여야 하지만 죽어야 할 자리를 잘 찾아서 죽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말린 상황에도 좋게 (이득을) 굴릴 수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옛날에는 그냥 안 죽어서 손해를 0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최근에는 죽어도 이득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많이 찾는 게 달라진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합류하게 됐을 때 어떤 기분,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냥 좋기도 하고 부담도 되는 자리였다. 꼭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주전으로 활약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금메달까지 획득하며 대중적 관심을 얻었는데 실제로 대회 이후 반응이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제가 집 밖에 잘 안 나가기도 해서 잘 모르겠다. (웃음) 원래 성격도 대중들의 관심 같은 걸 딱히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더 둔감한 것 같다. 단지 국가대표로서 대회에 임해서 좋은 성적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일상에서) 바뀐 건 잘 모르겠다.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함께한 선수들로부터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꼈는지도 궁금한데
당시 대회 버전이 (이미 LCK에서 경험한) 옛날 패치 버전이었다. 그래서 연습 과정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일정이 빡빡해서 생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주변 선수들 보면서 다들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생각 했던 것 같다.
당시 선수단의 분위기 메이커를 꼽자면 누구였나? 기억에 남는 일화도 소개 부탁드린다.
선수단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좋았다. 분위기 메이커는 ‘룰러’ 박재혁이었던 것 같다. (낯선) 분위기가 풀리려면 말이 나와야 하는데 룰러 선수가 말이 많은 편이다 보니 가끔 말실수도 하고 그런 게 겹쳐서 재밌었다.
이야기했듯이 젠지e스포츠에서 함께 활동했던 룰러 선수와 다시 만나게 됐는데 어떤 이야기 나눴나?
훈훈한 이야기는 안 나눈 것 같다. (웃음) 사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서로 웃겼다.
같은 포지션인 T1 ‘페이커’ 이상혁 선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다. 장난치는 모습도 주목을 받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당시에 해결하지 못했던 구도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됐다. 당시 애니라는 챔피언이 되게 애매했는데 그런 것들을 티어 정리할 때 함께해서 좋았다. 또 게임 외적으로도 많은 걸 배웠다.
롤드컵 이후 중국에서 열린 ‘상하이 마스터스’ 이벤트 경기에 탑 라이너로 참가했다. BLG의 ‘빈’ 천쩌빈 선수와 맞대결을 펼쳐 승리했는데 탑 라이너로 변신한 소감은 어땠나?
일단 탑으로 출전한다는 거 자체가 재미있었다. 또 빈 선수처럼 잘하는 선수를 상대하니까 (일방적이지 않고) 팽팽해서 즐거웠다. 무엇보다 중국 현지 팬분들이 응원을 많이 해 주셔서 되게 재밌었다.
쵸비 선수가 탑을 정말 잘한다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미드와 탑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상대적으로 미드는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다. 너무 힘든 라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탑은 뭔가 정글이 반을 가르는 상황이 아니면 비교적 생각할 게 덜 한 거 같다. 그렇다 보니 라인전에서 단순하게 상대와 나만의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이번 시즌 '기인' 김기인, '캐니언' 김건부 등이 합류하며 팬들 사이에서 '꿈의 라인업'이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젠지의 로스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로스터를 알기 전부터 그냥 잘 해야 겠다라고 생각했다. 일단 다들 잘하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선수들의) 이름을 보고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잘하는 선수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지난해와 3명의 선수나 달라지게 됐는데 가장 친해진 선수가 있다면? 분위기 메이커가 있다면?
되게 두루두루 친해졌다. 분위기 메이커는 '리헨즈' 손시우다. 손시우 선수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본인도 즐기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발표된 2024 젠지 로스터를 두고 일부 팬들 사이에선 ‘게임 내 소통 우려’가 나온다. 아무래도 다들 겉으로 보기에 조용한 성격으로 보여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팬분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것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 방송에서도 말수를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게임에 집중하느라 조용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방송을 끄고 나선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어느 팀이든지 처음 합을 맞출 때는 소통에서 이슈가 생길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이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합을 맞춰가고 있을 텐데 정글러인 ‘캐니언’ 김건부 선수와의 호흡은 어떤가?
미드와 정글의 합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바텀과 정글 사이의 소통이 더 중요한 거 같다. 지형 변화로 인해서 정글러가 미드를 개입하는 게 쉽지 않아졌다. 오히려 레드와 바텀 쪽으로 바텀 개입 루트가 많아져서 바텀-정글 간의 호흡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2024 시즌 대격변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이번 패치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템을 바꾸는 것 까진 좋았는데 맵을 바꾸는 건 개인적으로 좋지 않았다. 그동안 해온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데 맵이 바뀌면서 그런 데이터가 싹 다 날아간 기분이다. 예를 들면 라인전을 하면서도 미드가 살짝 넓어졌다는 게 체감이 크게 된다. 무빙이나 포지션이 좀 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사실 오래 한 사람한테는 좋은 패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래 할수록 몸에 익은 것들이 있는 데 그걸 버리고 새로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4 스프링 경기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예측하는지? 지난 2023 롤드컵 메타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 것 같다고 보는지도 말해달라.
초반에는 선수들이 완벽히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수로라도 물리거나 잘려서 죽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교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패치 방향성에 따라 메타가 결정되는 게임이라 변화가 있겠지만 당장 초반에는 교전이 많이 발생할 것 같다. 아직은 좀 발굴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이번 패치가) 본섭에 적용이 늦게 되다 보니 연구할 시간이 적었다. 그 와중에 저희 팀만의 방향성을 찾아야 되니까 아직 결론을 내릴 순 없을 것 같다.
젠지에 남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다른 팀 중에 갈 곳이 별로 없기도 했고 (웃음) 이미 미드 자리가 차있는 팀이 많았다. 그래서 LCK 내에는 사실 갈만한 자리가 없었고 간다면 중국리그인 LPL 쪽이었다. 고민하던 중에 젠지와 뜻이 맞아서 이번 시즌도 같이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2024 시즌 목표가 궁금하다.
결국에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게 (프로게이머로서) 근본적인 목표지만 (현재로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일단 경기를 잘해야 하고 결승에서 우승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결국 우승하려고 모인 거고 저희를 응원하는 팬분들도 팀과 선수의 좋은 성적을 원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는 게임을 넘어 스포츠, 그리고 문화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는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상 깊었던 경기들은 물론, 궁금했던 뒷이야기 나아가 산업으로서 e스포츠의 미래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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