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글러브 버려" 1급 심리상담사의 한 마디, '입스 유격수'를 '샌프란시스코 중견수'로 바꿨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그때 감독님이 수비코치님이셨는데 '야 글러브 버려' 이러시더라고요."
2017년 키움 코칭스태프의 결정이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메이저리거로 만들었다. 입스(Yips, 긴장으로 인해 근육이 경직돼 익숙한 동작을 하지 못하는 현상)로 고민하던 유격수가 아니라 타격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외야수가 되면서 잠재력이 폭발했다. 안 되는 이유를 찾기보다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키움 히어로즈는 16일 오후 이제는 메이저리거가 된 이정후의 미국 브이로그 2편을 공개했다. 1편에서 샌프란시스코와 합의한 뒤 이어진 계약과 메디컬테스트, 입단식까지 공개한 이정후는 2편에서 키움 소속 선수로 지냈던 추억을 돌아봤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홍원기 감독과의 에피소드다. 에이전트 이정문 씨가 '홍원기 감독님에게 한 마디'라고 하자 이정후는 잠시 고민하더니 "감독님 덕분에 이렇게(메이저리거가)됐다"고 말했다.
또 "(2017년)감독님이 수비코치 하실 때 나는 내야수였다"며 "처음 프로에 갈 때 걱정이 많았다. 휘문고 때 같이 뛰었던 형들이 프로 오면 폼도 바꾸게 하고 고등학교 때 하던 것들을 다 바꾼다고 하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운동을 했는데, 처음 마무리캠프 가니까 코치님들께서 폼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강병식 타격코치님과 타격훈련을 하고 영상을 찍어서 면담을 한 적이 있다. 폼을 고치는 시간인 줄 알았다. 너무 좋으니까 폼 바꾸지 말고 지금처럼 치면 잘할 거라고 해주셔서 놀랐다. 바꿨다고 잘했을지는 모르겠다. 편한 상태에서 편한 폼으로 치게 해주신 거니까(감사하다)고 돌아봤다.
수비에 대해서도 압박을 주지 않았다고. 이정후는 "그때 입스가 있었는데 수비훈련을 하루종일 수비하는 게 아니라 더 편하게, 공 잡기만 하라고 하신 적도 있다. 던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주셨다. '너는 배팅에 장점이 있는 선수니까 수비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셨다. 단시간에 고치려다 장점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해주셨다"고 얘기했다.
그때 키움 코칭스태프는 이정후가 입스를 극복하는 것보다 포지션을 바꾸는 것이 나은 방법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원기 감독, 당시 수비코치가 일본 2차 스프링캠프에서 이정후에게 넌지시 외야수 전환 의사를 물었다. 이정후의 회상은 이렇다.
"스프링캠프 때 내야 수비를 봤는데, 오키나와(캠프)에서 외야 제안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입스가 컸을 거다. 그래도 타격은 자신있었다. 일본에 넘어가서 경기를 했는데 배팅은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때 외야 제안을 받았다. 그때는 욕심에 유격수로 들어왔는데 내야를 해야하지 않나 하고 거절했다. 다음날 바로 후회를 했다. 경기에서 송구 실책을 두 개인가 했다. 어제 외야한다고 할 걸 그러고 있었다."
"귀국 이틀 전에 경기를 안 나가고 있었는데, 외야 선배 한 분이 경기 중에 근육이 올라와서 빠지게 됐다. 감독님이 외야 나갈 수 있겠냐고 하셔서 나갔는데 그날 안타 2개인가 쳤다. 다음날 SK랑 경기할 때는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메릴 켈리 상대로 안타를 치고 빠졌다. 3이닝 만에 펜스에 무릎을 부딪혀서 빠졌다."
이정후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외야수를 하게 될 줄 몰랐던 모양이다. 시범경기를 앞두고 내야수들과 함께 몸을 푼 뒤 캐치볼을 하려고 하는데, 홍원기 감독이 이정후에게 내야 글러브를 버리라고 했다. 이어진 미팅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정해줬다고.
이정후는 "감독님 덕분에 외야를 보기 시작해서 신인 때부터 뛰고 성장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나를 완전 믿어주신다. 좋은 감독님 밑에서 야구했다. 내가 뭘 해도 감독님은 다 믿어줬다. 못 해도 믿어주고 너무 좋았다. 그 기대에 보답하려고 진짜 열심히 했다"고 돌아봤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정후는 다 처음이니까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다 걱정된다. 한국은 늘 6시 30분 경기, 주말 5시 2시 경기다. 내일 어떻게 움직일지 다 안다. (이제는)당장 내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야 한다. 빨리 적응해야 할 것 같다. 비행기 이동, 시차적응 이런 것들(이걱정이다)"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일단 여유롭다. 야구장이랑 바다가 가까우니까. 아직도 안 믿긴다. 여기가 홈구장이라는 게"라며 샌프란시스코 이적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입단식에서 화제가 된 "핸섬?"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나왔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이정후는 파르한 자이디 사장으로부터 유니폼과 모자를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핸섬?"이라고 되물어 웃음을 안겼다. 취재진도 팬들도 이정후의 순발력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정후는 "유니폼 딱 입고 있는데 다들 너무 조용한 거다. 카메라 소리 밖에 안 들리고. 모자까지 썼는데 포즈를 잡으려니 부끄럽더라. 부끄럽다기 보다 어색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왔다. 갑자기 머릿속에 그것 밖에 안 떠올랐다"고 말했다.
한편 이정후는 1편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샌프란시스코로"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친정 팀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강조했다. 2편에서는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바꾸면서도 키움 히어로즈를 지우지 않고 남겨뒀다. 프로필 사진도 곧바로 바꾸지 않았다. 이정후는 "내년(2024년)에 다 잘할 거다"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또 "야구에서는 내 빈자리가 메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시끄럽고 말 많은 건(모르겠다)"며 남은 선수들을 신경 썼다.
이정후는 경제적으로도 키움에 큰 도움을 줬다. 샌프란시스코는 키움에 포스팅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포스팅 비용만 1882만5000달러(약 247억원)다. 키움은 이정후라는 대형 스타를 메이저리거로 키운 덕분에 247억원에 이르는 보상을 받게 됐다. 이정후는 본인의 포스팅 비용으로 키움이 계속해서 빅리거 사관학교의 명성을 이어 가길 바랐다. 19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키움에 큰돈을 안긴 것과 관련해 "키움도 좋지 않을까 싶다"며 "선수들을 위해 더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더 많은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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