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코리안 트랩과 K-국방혁신의 과제
토마스 맬서스(Thomas R. Malthus)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맬서스는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에 미치지 못하는 식량부족의 비극을 맬서스 트랩(Malthus Trap)으로 정의했다.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이 빈곤, 기아,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막기 위해 논쟁적인 정책을 주장하기도 했다.
맬서스 트랩과는 정반대로 급격한 한국사회의 인구감소와 사회구조의 불균형이 '코리안 트랩(Korean Trap)'의 위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매년 세계 최하위 기록을 갱신해왔다. 2018년 처음 1.00명 이하로 하락한 이후 2020년 0.84명, 2022년 0.78명, 2023년 0.70명으로 합계출산율의 하락속도 역시 기록적이다. 작년 12월 통계청은 비관적 전망보다 비관적인 인구전망을 발표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5년 0.65명으로 더욱 하락한 이후 2027년 0.71명으로 소폭 반등하게 될 것이다. 2040년 한국의 총인구는 5000만 명으로 감소하고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34.4%, 중위연령은 54.6세가 될 것이다.
인구감소는 인구증가 시대에 구축된 사회체계의 축소 구조조정을 수반하고 있다. 유치원, 초중고는 물론 대학,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유소년과 청년대상 사회체계의 축소 구조조정은 이미 사회적인 현안이 됐다. 고령층에 대한 부양비의 증가가 저출산, 저성장과 결부되면 낙관적 인구성장 시기 설계된 복지, 연금, 교육, 노동, 주거 등 사회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학령인구, 노동인구의 감소가 도시, 수도권의 과밀화라는 불균형과 병행되면서 구조조정을 넘어 농촌소멸, 지방소멸, 대학소멸의 위기가 됐다. 그나마 사회체계는 상호적응적인 축소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축소사회에 적응적인 사회체계를 모색하는 것이 사회전반의 과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병역자원 감소는 군대에게는 상상 이상의 위기다. 병역자원의 급격한 감소에 따라 병력감축은 예정된 미래가 됐다. 작년 7월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됐던 '50만 명 수준의 상비병력 운용목표'를 삭제하는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다. 모든 사회조직과 마찬가지로 군대 역시 희소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해 군사적 효과성을 달성해야 한다. 군사적 효과성이란 병력, 기술, 자원 등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 안전보장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합리적, 자원합리적 효율성은 국방전략의 필요조건일 뿐 결코 안전보장 목적보다 우선할 수 없다. 더구나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병역자원 감소에 상호적응적인 병역자원의 효율성을 논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핵무장한 북핵위협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미중경쟁, 러우전쟁은 남북은 물론 동북아 각국의 총체적인 군비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안보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병역자원이 감소하는, 안보위협의 경직성과 안보자원의 경직성이라는 이중모순에 직면한 것이다.
병역자원 감소를 계기로 포괄적인 군사혁신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초급간부의 처우개선과 간부의 계급정년 연장은 직업군인의 직업안정성과 매력을 높일 수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았던 군대우위의 병력구조는 연령, 성별, 병과 등 병역제도의 혁신을 지체시켰다. 타국의 사례가 대변하듯 여군확대는 국방인력의 제약을 해소할 수 있다. 인공지능, 유무인복합체계(MUMT), 자율무기 등 병력-기술대체는 북한과 비교해 경제·기술적으로 우월한 한국이 전략적 우위를 군비경쟁 전략이다. 아울러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은 물론 다자적인 안보네트워크를 심화하는 것 역시 안전보장과 안보자원의 보완·대체를 위해 필요하다. 군사기술, 방위산업은 물론 국방인력의 획득, 양성, 교육에서 민군협력의 새로운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4차 산업혁명시대 군사혁신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
인구학은 물론 여러 학문발전에 통찰력을 제기했던 맬서스의 비관은 다행히 비관론으로 그쳤다. 그 원인은 멜서스는 자연법칙에만 집중했을 뿐 위기에 대응하고 혁신하는 '인간법칙'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코리안 트랩은 비교대상과 경험이 없는 사회전반의 위기다. 특히 안전보장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군대에게는 '안보공백의 덫'이 될 수 있다. 병역자원 감소에 대한 비관론을 극복하고 질적 군사혁신을 위해서는 전략, 전력, 부대구조의 전반적·동시적 혁신을 주도하는 군대의 책임이 중요하다. 기술과 비용은 물론 시간적 충분성을 충족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정치가 결정했던 과거와 달리 군이 기획·결정하고 주도하는 K-군방혁신을 기대한다. 윤대엽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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