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극한직업[편집실에서]
제1야당 대표 ‘살해 미수’ 사건이 단독범행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경찰의 발표가 그렇습니다. 정치적 신념에 과몰입된 단독범의 소행이랍니다. 혼자서 했을 리 없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계획범죄가 분명하다며 진상 규명을 외쳐보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입니다. 범인의 신상은 물론 당적 관련 사항도 ‘함구령’입니다. 반대쪽에선 재판 일정을 연기해보려는 자작극, 당 장악력을 높이려는 술수라는 식으로 맞받아칩니다.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을 놓고선 지역 의료 홀대, 특혜 시비까지 불거졌습니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홍해가 갈라지듯 대중의 시선이 엇갈립니다. 테러조차 정쟁의 대상이 돼버렸습니다.
일시 정전이 된 것처럼 잠시 멈칫하던 정치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총선시계’를 바삐 돌립니다. 너의 위기는 나의 기회라, 어수선한 바닥 민심을 노리고 여당 지도부가 부산으로 출동합니다. 좌천됐을 때 서면 학원에서 기타를 배웠다거나 너무나 사랑하는 도시라는 둥 낯 간지러운 순애보를 펼치며 부산과의 인연을 강조합니다. 어찌나 낭만적인지 듣는 사람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입니다.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다 제쳐두고 정치란 모름지기 선거를 앞두고선 상대방이 민망해하더라도 일단 큐피드의 화살을 쏘고 봐야 하는 모양이지요. 주식시장에 이어 재건축 규제 완화, 다주택자 세 부담 경감 등 부동산 경기 부양책도 총출동하는 양상입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노라 수준의 낯 뜨거운 공개 구애가 여기저기서 넘쳐납니다.
민망하기로는 야당 돌아가는 모양새도 둘째가라면 서럽습니다. 친명, 비명, 수박, 탈당 타령으로 날 새는 줄 모릅니다. 끌어안아라, 나갈 거면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나가라 서로 삿대질하기 바쁩니다. 주연도 조연도, 현역도 원로도 알 듯 모를 듯 어슴푸레한 말만 내놓습니다. 통합을 외치지만 뒤로는 분열을 획책하고, 대의명분을 들먹이지만 속내는 공천과 정치생명 연장입니다. 김종민, 이원욱, 조응천 다 나가는데 자기는 남겠답니다. 윤영찬 의원 얘깁니다. 알고 보니 그의 지역구(성남 중원) 경쟁자가 ‘성희롱’ 발언으로 빨간불이 켜진 상태네요. 역시 너의 위기는 나의 기회라, 탈당 기자회견 30여 분 전에 잔류를 선언합니다. 속내가 빤히 보이는데도 겉으로는 사뭇 비장합니다. 민주당에 묻어 있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흔적이 너무 귀하답니다. 이걸 두고 원칙과 상식은 어디로 갔냐, 물으면 정치현실 모르고 물색없는 주장을 펴는 꼴이 되는 걸까요.
‘여의도 문법’이니 ‘서초동 사투리’니 공방이 시끌시끌합니다. 다 떠나서 요즘 정치권을 아우르는 한마디를 꼽으라면 “먼저 민망해하는 자가 진다”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제와 오늘 말이 다르고, 내 편과 네 편의 잣대가 다릅니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자기만 모르는 척 꼼수를 부립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짐짓 준엄한 표정까지 짓는 정치인들을 보면 역시 보통 멘털은 아니구나 싶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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