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건설이 뜬다] ⑤‘베이비부머’ 은퇴… 실버타운 수요 증가, 마냥 반길 수만 없는 이유
“수요 대비 공급 부족… 대기만 길어져”
양극화 문제도 불거져… “중산층 갈 곳 없어”
2015년 노인복지법 개정… 분양 불가능해져
“수요 늘수록 통계·용어 법적 정비가 우선”
노인 1000만시대.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등장하면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거 환경 변화도 예상된다. 실버타운이 대표적이다. 총 6회에 걸쳐 실버타운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봤다. [편집자주]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72세·남)씨는 최근 소유하고 있던 서울 아파트를 역모기지으로 돌리기로 했다. 자녀들이 있는 서울 인근의 실버타운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수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은 다른 자산을 처분해 마련했고, 매월 내는 관리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A씨는 “80세까지는 일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도 “건강을 잘 관리할 수 있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것을 노후계획으로 잡고 있다”고 했다.
한 시행업체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버단지’를 조성하는 데 뛰어들 예정이다. 최근 2~3년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온다고 본 것이다. 이미 수도권에서 한 차례 성공을 거둬 자신감도 얻었다. 이 업체의 임원은 “과거 상위 1%만 누렸던 실버타운이 이제는 대중화 될 때가 됐다”면서 “내년이 사업에 본격 진출할 적기라고 본다”고 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1946년~1965년에 태어난 이들은 우리나라의 부(富)의 상당부분을 갖고 있다. 부동산·금융자산을 합해 한국 가계 순자산의 46%를 60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 고도성장기 생산가능연령대를 보내면서 부를 축적한 베이비부머들은 이를 기반으로, 질 높은 노후를 보내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실버타운은 공급이 수요를 쫒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 시행사가 자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의 65세 이상 인구는 2022년 기준 357만명에 달한다. 반면 이 지역에 공급된 노인복지주택은 단 27개소에 불구하다. 노령 인구대비 노인복지주택 세대 수는 0.17%에 불과한 셈이다. 유명 실버타운의 경우 대기기간이 2년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공급되는 실버타운도 보증금과 월생활비 비싸 중산층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민간 사업자들이 주로 공급하는 실버타운은 이른바 ‘상위 1%’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최대 보증금이 9억원에 달하는 ‘더 클래식 500′이 그간 최고급 실버타운으로 손 꼽혔지만 최근 더 고가인 실버타운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마곡에 임대분양한 VL르웨스트는 보증금이 최대 14억5000만원에 달한다. 강남, 청라에 자리를 잡은 더시그넘하우스의 보증금도 7억3000만~10억7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를 주축으로 공급되는 노인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은 ‘저소득층’이 중심이 되고 있다. 공급대상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으로 한정돼 있어서다. 정부는 2015년부터 연 1000호씩 공급해 왔는데 올해부터 수요가 많아져 3000호씩 공급하기로 했다. 실버타운 시장은 민간·공공 등 공급주체에 따라 양극화 돼 있어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실버타운을 ‘임대’ 형식으로만 공급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선다. 2015년 7월 정부가 분양형 실버주택을 폐지하고 임대형으로만 공급하도록 하면서다. 그 이전에 자녀 대신에 부모가 분양을 받거나, 입주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매하는 경우가 횡행하면서다. 하지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지금 중산층이 접근가능한 적정 가격 수준의 실버타운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분양형 실버주택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선종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2015년 법이 개정되면서 디벨로퍼들이 참여하기가 어려운 환경이 됐다”면서 “노령층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아주 고급화된 하이엔드 실버타운 아니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정부가 공급하는 곳 말고 중산층은 들어갈 곳이 없다”고 했다.
한 대형 시행사 관계자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임대만 하면 시공비와 같은 대규모 자금을 선투입하고 임대로만 이를 회수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최근 등장하는 리츠, 펀드 등도 초기 투자비용을 3~5년 뒤에나 회수할 수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실버타운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집계가 되지 않는 점도 미비점으로 꼽힌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실버타운은 노인복지주택, 양로시설, 노인요양시설로 나뉜다. 하지만 민간에서 공급되는 실버타운은 다들 제각각 다른 형태로 등록돼 있다. ‘더클래식500′은 유료 양로시설이고, VL르웨스트, 삼성노블카운티 등은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된다. 시니어주택, 실버타운, 실버주택 등 법정단어로 정비가 되지 않는 점도 혼란을 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은 “양로시설의 경우 유·무료가 통합돼 집계가 되고 있는 등 정부부처가 국가와 민간이 운영하는 실버주택을 각각 통계로 내지 않고 있어 정확하게 몇 개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실버주택 관련 산업이 커질 수록 법적인 정비가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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