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희생·이기는 공천' 반복되는 보수 공관위 역사…총선 명운 가를까
19대 '새누리당' 재창당급 쇄신 작업…공천 잡음 압도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총선 후보 옥석을 가려내는 각 정당 소속 '공천관리위원회'는 당과 후보의 명운을 결정짓는 심판대 역할을 했다. 총선은 대통령 선거와 달리 인물보다 소속 정당 투표 성향이 짙은 탓에 공천 규칙과 기조, 공천 여부가 당 안팎의 판세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의 공관위는 지난 10여년간 치른 19·20·21대 세 번의 총선에서 승리와 패배의 맛을 고루 봤다. 과거 선거마다 공관위는 '중진 용퇴', '실력', '쇄신'을 주문했지만 실제 이행은 쉽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아래 출범한 국민의힘 공관위가 과거 공천파동의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총선 승리를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2020년 21대 총선…'판갈이·이기는 공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공관위는 원로 정치인 김형오 위원장을 앞세워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현역 의원을 다수 불출마하도록 하는 대대적 쇄신 작업에 나섰다.
당시 김 위원장이 내세운 키워드는 '판갈이'였다. 김 위원장은 "오염된 물을 갈지 않으면 아무리 새 물고기를 넣어봐야 죽을 수밖에 없다"며 "판갈이를 하고 새 물고기를 많이 영입하는 인재 발굴 작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한 공천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 선언이 잇따르며 당내에서는 거센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황교안 당시 대표의 리더십 부재 문제와 김 위원장을 둘러싼 사천(私薦)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최고위원회가 공관위 결정에 재의를 요구하면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민경욱 의원의 공천 결과가 뒤집히는 '공천번복' 사태를 겪으며 김 위원장은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21대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당시 미래통합당이 총선 패인을 분석한 백서는 "중진 의원들을 험지로 재배치한 것은 참신한 인물을 찾지 못해 전현직 의원으로 돌려막기 한 것"이라며 "황교안 전 대표는 혁신 공천, 공정한 공천, 이기는 공천을 천명했지만 실제 공천에서 이런 원칙이 제대로 적용됐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2016년 20대 총선…친박 vs 비박 '옥새파동'
2016년 20대 총선에선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막장공천'이 패배 원인으로 꼽힌다. '박근혜 경제 과외교사'로 통한 이한구 공관위원장 진두지휘 아래 출범한 공관위는 비박계(비박근혜계)였던 김무성 당시 대표와의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이한구 당시 위원장의 물갈이 대상은 '저성과자'와 '저인기자'였다. 이 위원장은 "19대 국회 때 확실히 시원찮았다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라며 "20대 국회의원으로서 국가를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개혁하는 데 앞장설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친박 대 비박계 갈등 정점은 김무성 당시 대표가 공관위 추천장에 대표 직인을 거부하고 부산에 가버린 '옥새파동'으로 이어졌다. 김무성 당시 대표는 비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과 총선 패배라는 불명예를 안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당시 새누리당이 총선 패배 후 펴낸 '국민 백서-국민에게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에는 "담뱃값 인상,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 일방적인 의견을 관철하려는 청와대 아집에 국민은 마음을 닫게 됐고 대통령 눈치만 보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새누리당의 무능함에 국민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 담겼다.
◇2012년 19대 총선…'박근혜표 쇄신' 공천논란 압도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지난 12년간 보수 총선 역사 가운데 마지막 승리를 기록한 선거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재창당 수준의 과감한 개혁은 선거전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집권 5년차에 치른 선거에서 야권은 정권 심판 이상의 담론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며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줬다.
새누리당 총선 후보를 선발하기 위해 꾸린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는 정홍원 위원장이 진두지휘했다. 정 위원장은 친이명박계와 주류인 친박계 중진들에게 용퇴를 주문하고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에는 현역 비례대표 의원들의 공천을 배제하는 쇄신안을 냈다.
정 위원장은 당시 "중진의원들에게 용퇴를 하라, 마라 하는 것은 실례지만 몸을 던지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라며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라는 시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또 "친이, 친박이란 용어는 구시대적인 용어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그런 용어가 없어져야 한다"며 "이번에는 도덕성 문제도 중요하지만 철학이나 됨됨이, 국민과 호흡을 어떻게 같이할지를 참고해 결정하겠다"고도 했다.
당시 총선은 여야 모두 내홍과 분열 끝에 치른 선거라는 점에서 최근 총선 판세와 유사하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는 불출마 압박을 받은 친이명박계와 '보복공천' 논란을 빚었다. 외부 비대위원과 당내 의원들의 마찰도 이어졌다.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전국적 야권연대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데 고초를 겪어 여야 모두 혼란한 내분 수습이 총선 전 과제로 떠올랐다.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쇄신 작업은 공천 잡음을 압도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 불출마를 선언하며 중진 기득권 포기에 앞장섰다. 당명은 14년간 사용한 한나라당 대신 새누리당으로 바꿔달고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선포했다. 당시 야권 인사였던 김종인 비대위원과 청년 인재로 이준석 비대위원을 각각 영입한 박 위원장은 당 소속 국회의원의 회기 내 불체포 특권 포기, 비대위 산하 디도스 검찰수사 국민검증위원회 설치와 같은 과감한 개혁안을 앞세워 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22대 총선을 80여일 앞두고 국민의힘이 공천관리위원 출범을 본격화하면서 공천 여부가 선거 결과에 미칠 영향에 초미의 관심이 모인다. 이번 총선이 정권 심판론으로 끝날지 야당 심판론으로 마무리될지는 과거 패인을 되풀이하지 않을 여야의 혁신 경쟁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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