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못했던 신상공개…뉴욕타임스 어떻게 가능했나[감춰진 이름들]下
형법과 문화적 차이로 신상공개 여부 갈려
[편집자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이후 피의자 신상공개 논란이 재점화했다. 특히 경찰의 신상 비공개 결정과 이와 대비되는 <뉴욕타임스>의 보도 이후 정치 테러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본격 논의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는 왜 시작됐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서울=뉴스1) 이기범 김민수 기자 = "뉴욕타임스는 공개했는데 왜 경찰은 못 하나"
경찰과 뉴욕타임스의 엇갈린 선택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습격범 신상공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일 이 대표의 피습 사실을 전하며 피의자 김모씨(67)의 실명과 직업, 자택 위치 등 신상 정보를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모자이크 처리 없이 김씨의 얼굴을 노출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 경찰은 지난 9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관련 논의를 했지만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피의자 신상공개 문제는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됐다. 특히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테러인 데다 해외 언론의 신상공개 소식이 더해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무엇이 국내 경찰과 해외 언론의 선택을 갈랐을까.
◇ 미국, 체포 시점에 신상공개…일본도 실명보도 허용
1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해외 주요 국가들은 피의자 신상공개에 상대적으로 허용적 태도를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3월 발간한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 관련 현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의 경우 피의자 신상공개를 제한하는 명시적 법률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통상 체포 시점에 신상공개가 이뤄지고 있다. 주 단위 경찰의 내부 지침에도 신상공개에 허용적인 내용이 담겼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경찰국은 성인 피의자의 경우 재판에 넘겨지기 전이라도 체포된 후 이름·나이·성별·인종·거주지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관련자의 안전이나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은 선에서 체포된 피의자의 이름·주소·직장·나이·성별 등을 공개한다.
일본은 실명 보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심지어 피해자의 실명도 프라이버시 보호나 공익성 등을 고려해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허용하고 있다. 수사 기관의 피의자 신상공개와 관련된 특별한 조치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영국과 독일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이다.
영국은 경찰대학의 공인 전문 실무 분야 지침을 통해 경찰이 피의자 성명을 공개하거나 특정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위협이나 범죄 예방·발견, 공공의 이익 등이 명확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단 기소 단계나 법원의 소환을 받은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피의자 이름을 밝히도록 했다.
독일은 범죄자와 피의자에 대해 공개적인 신원 노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대한 범죄나 사회적 중요성에 따라 공익성이 인정될 경우 피의자의 신원을 명시한 보도가 허용된다.
◇ 문화적 차이에 따라 신상공개 제도도 달라져
우리나라는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를 두고 있는 탓에 수사기관이나 언론의 피의자 신원공개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해당 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신상공개가 이뤄질 뿐이다.
오는 25일부터는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정강력범죄, 성폭력범죄 외에도 중상해와 조직 범죄, 마약 범죄 등에 신상공개가 확대 적용된다.
해외와 국내의 문화적 차이도 신상공개 제도에 영향을 미쳤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동서양의 문화적 특성이 피의자 신상공개에 영향을 미친다"며 "개인주의적인 서양은 신상공개를 하더라도 피의자에 대한 집단적인 공격으로 이어지진 않는 편이지만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는 감정적으로 수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신상공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피의사실공표죄의 입법 취지에 대해 제2대 국회 엄상섭 의원은 "조금만 경찰서 문 앞에만 가도 당장에 신문에 나고, 여러 가지 말썽이 돼서 그 혐의사실을 받은 사람은 신용유지상, 명예유지상 대단한 곤란을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미국 같은 경우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증거가 확실하면 신상공개를 한다"며 "미국적인 시각에서는 이재명 대표 습격 피의자 신상공개를 안 하는 게 의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국내 언론이나 경찰은 너무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표현의 자유냐 피의자 인권이냐 하는 부분에 있어 후자를 강조하고 있다"며 "국민의 알권리나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가능하면 공개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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