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미적분Ⅱ, 많이 가르쳐 보내는게 능사 아냐
대학생 학습시간, 고교생의 절반… 고교생 부담 덜어주는 것이 순리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입 개편에서 수능에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을 넣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한수학회 등 이공계는 이공계 대학 과목의 기초인 심화수학이 빠지면 이과 대학 교육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큰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수학과 교수, 공대 교수들 얘기를 들어본 결과, 수능에서 심화수학을 빼도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선 사실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편으로 수능 선택 과목에서 빠지는 것은 미적분 전체가 아니라 미적분Ⅱ와 기하다. 미적분의 개념을 담은 미적분Ⅰ은 모든 학생이 배우고 수능에서도 시험을 보는 것이다. 미적분Ⅱ는 지수·로그함수, 삼각함수 등 초월함수 계산을 위한 미분법·적분법이다. 이 과목을 수능 시험에서 안 보는 것이지 고교에서 배울 수 있고 내신에 반영하는 것은 지금과 같다. 그래서 교육부 관계자들은 대입에서 내신 등 학생부를 꼼꼼히 보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공계에 갈 학생들이 미적분Ⅱ를 소홀히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미적분Ⅱ는 고교생한테 꼭 가르칠 필요는 없다며 이공계 대학에서 가르쳐도 충분하다는 주장은 어떨까. 전 세계 공대는 대학 1학년 때 미적분학을 가르친다. 교재도 제임스 스튜어트가 쓴 ‘미적분학(Calculus)’으로 똑같다. 이 내용이 미적분Ⅱ와 큰 차이가 없다. 수능에서 미적분Ⅱ를 넣지 않으면 대학들이 약간 힘들어지는 정도이지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박제남 인하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은 미적분을 3학점씩 2학기 가르치는데, 수능에서 빠지더라도 4학점 2학기 정도로, 1학점씩만 늘리면 문제 없을 것”이라며 “지금 연세대 공대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영찬 전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도 “고교에서는 미적분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게 하고 대학에서 전공 특성에 맞게 수학을 가르치면 좋겠다”며 “지금 고교에선 1~2분 내에 문제를 푸는 요령을 반복하는데, 식만 세우면 계산은 컴퓨터가 하는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이번 정시에서 자연계열은 과탐Ⅱ 과목을 하나 이상 응시해야 하는 조건을 폐지했다. 과탐 ‘Ⅰ+Ⅰ’ 조합도 가능해진 것이다. 과탐Ⅱ는 과탐Ⅰ에 비해 학습량이 많고 난도가 높아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는 과목이다. 서울대가 이렇게 한 이유는 지원자 수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과탐Ⅰ만 배운 학생과 과탐Ⅱ를 응시한 학생들의 입학 후 학업 성취를 보니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이유라고 한다. 과탐Ⅰ만 배운 학생들도 대학에서 잘 가르치면 잘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미적분Ⅰ과 미적분Ⅱ 논쟁에도 이 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이 가르쳐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생활 시간 조사’ 결과를 보면 초·중·고·대학생들이 하루 중 ‘학습’에 쓰는 시간은 초등학생이 4시간36분, 중학생 5시간57분, 고등학생 6시간44분, 대학생 3시간29분이었다. 놀랍게도 학습에 가장 적은 시간을 쓰는 건 대학생으로, 초등생보다도 적고 고교생의 절반 수준이었다.
우리나라만큼 고교생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고교까지 공부하느라 진을 뺀 학생들이 정작 대학 가서는 퍼져서 공부를 안 한다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불쌍한 고교생 부담을 적절한 수준으로 덜어주고 대학 가서 공부하게 하는 것이 순리 아닐까. 수능에서 미적분Ⅱ가 빠지면 학생들의 과도한 공부 부담이 줄어들고 사교육도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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