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부인이 웬 술집?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말 싫었다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계속해서 ‘한국이 좋다’고 말할 겁니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의 사회공헌지원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아베 아키에(安倍昭惠·62)씨는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분위기 탓에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한국이 좋다’고 말하길 꺼리게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22년 7월 피격돼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인 그는 2010년 후반 최악의 한일 관계 때도 한류팬이었다. 그는 “이웃인 한국과 일본은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되는 부분도 많다”며 “앞으로 한국인들과 즐거운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한국말을 배운 것으로 안다.
“한국 드라마는 좋아하는 게 맞는데, 잘못 알려진 대목이 있다. 2000년대 초, ‘언젠가 북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인을 납치한 납북자 문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평생 납치 피해자를 북한에서 데리고 오는 데 몰두했다. (저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북한에 갔을 때 한국말을 모르고 북측 통역에만 의존했다간 제대로 통역해 줬는지도 모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시골에서 북한 사람들과도 직접 대화하고 싶었다.”
-납북자 문제는 한국도 심각한 문제다.
“납북자는 일본과 한국이 같이 안고 있는 문제니, 일·한이 협력했으면 좋겠다. 일·한이 우호 관계를 만드는 게 동아시아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북한에도 좋은 사람들이 살 텐데, 지금 상황은 안타깝다.”
-친한파라고 일본 우익들은 비난한다.
“국가 간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니까 나쁘다’는 논리는 아니지 않나. 과거 역사 탓에 뿌리 깊게 상대 국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민간 교류는 계속됐으면 한다.”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본다는데.
“남편이 ‘아내가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 한국어도 잘한다’고 주변에 말하곤 했다. 립 서비스 차원이었는데 그 탓에 그렇게 알려졌다. 오히려 오래 공부했는데도 아직 이 수준이라, 부끄럽다. 기회가 되면 몇 달간 한국 유학 가서 어학 공부하고 싶다.”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한국말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말 잘 못해요’라고 했다.)
- ‘오징어 게임’은 봤나.
“넷플릭스로 봤다. 충격이었다. 솔직히 전 세계에 오징어 게임이 유행하는 게 조금 무섭기도 했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같은 한국 드라마가 좋다. 사랑의 불시착은 남편과 둘이서 봤다.”
-도쿄에서 김장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지난달에도 주일 한국 대사관의 김장 행사에 갔다. 딱히 정치적인 우호 메시지를 보낸다 같은 계산은 없다. 개인적으로 김치를 좋아해 김장을 담가보고 싶어서다. 본래 (아베 전 총리 지역구) 시모노세키에는 재일 한국인도 많이 살고 한국 축제도 열린다. 한국 축제 때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참석한 적도 있다. 한복을 입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다들 좋아했다.”
-한국 대통령 부인들과도 교류해 왔는데.
“작년 12월 한국 방문 때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만났다. 김건희 여사에겐 ‘본인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가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야당이 정권 비판의 일환으로 김 여사를 비판하는 거라면 안쓰럽다. 김정숙 여사와는 오랜 친분이다. 이번에 만났더니 ‘(경남 양산의) 평산에서 책방을 하는데 서울의 네온이 그립다’고 하더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적도 있는데.
“남편이 총리 하던 시절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꽤 했다. 이번 달에는 야스쿠니신사에서 강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이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앞에서 두 손을 마주하는 행동(합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신사는 일본의 신(神)이니까. (한국인들은) 일본의 신을 믿지 않으니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데. 미묘한 문제라서….”
-총리 부인 시절 ‘우즈’라는 이자카야(일본식 술집)를 운영했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우즈’를 시작할 때는 남편이 다시 총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도쿄에서도 사재기가 있었다. 돈이 있어도 음식을 구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야마구치현에서 쌀을 짓기 시작했다. 무농약으로 만든 쌀을 도쿄 사람들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우즈다. 총리 부인이 왜 술 파는 가게를 하느냐는 비판을 받으니 오히려 더 열심히 했다.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말이 싫어, 스스로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2022년 폐점했다. 당시 점원이 그만둔 데다 남편도 사라지니 닫을 때인가 했다.”
-현재 한국의 무엇을 좋아하나.
“박용하씨가 사망한 이후에 오랜만에 ‘좋다’고 생각한 배우는 정경호씨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너무 재밌었다. 박용하씨는 정말 응원했는데, 안타깝다. 한국 음식은 김치·잡채·전골류 모두 좋아한다. 작년 12월 한국 여행 때 아침에 시장에 가서 만둣국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베 아키에(安倍昭惠·62)
일본 최장수 총리였던 고(故) 아베 신조의 부인. 일본 과자 대기업인 모리나가제과 창업자 가문 출신이다. 광고 대행사 덴쓰에 근무하다 1987년 아베와 결혼했다. 둘 사이 아이는 없다. 아베 전 총리가 2022년 길거리 연설 중 피살되자 일본 자민당과 지역 주민들은 부인인 그가 지역구를 승계하기 바랐지만 거절했다. 한류 팬으로, ‘집안의 친한파 야당’으로 불려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