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부인이 웬 술집?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말 싫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1.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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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아베 前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김장 담그기 행사에서 아베 아키에(가운데) 여사가 김장 담그기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과거 서울을 방문했을 때 ‘독도는 한국 땅’이란 집회가 있어 긴장했는데, 서울 시내 가게에 들어가니 일본인이지만 정말 잘 대해줬다”고 회상했다./아베 아키에 X(옛 트위터)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계속해서 ‘한국이 좋다’고 말할 겁니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의 사회공헌지원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아베 아키에(安倍昭惠·62)씨는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분위기 탓에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한국이 좋다’고 말하길 꺼리게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22년 7월 피격돼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인 그는 2010년 후반 최악의 한일 관계 때도 한류팬이었다. 그는 “이웃인 한국과 일본은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되는 부분도 많다”며 “앞으로 한국인들과 즐거운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한국말을 배운 것으로 안다.

“한국 드라마는 좋아하는 게 맞는데, 잘못 알려진 대목이 있다. 2000년대 초, ‘언젠가 북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인을 납치한 납북자 문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평생 납치 피해자를 북한에서 데리고 오는 데 몰두했다. (저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북한에 갔을 때 한국말을 모르고 북측 통역에만 의존했다간 제대로 통역해 줬는지도 모르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시골에서 북한 사람들과도 직접 대화하고 싶었다.”

-납북자 문제는 한국도 심각한 문제다.

“납북자는 일본과 한국이 같이 안고 있는 문제니, 일·한이 협력했으면 좋겠다. 일·한이 우호 관계를 만드는 게 동아시아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북한에도 좋은 사람들이 살 텐데, 지금 상황은 안타깝다.”

-친한파라고 일본 우익들은 비난한다.

“국가 간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니까 나쁘다’는 논리는 아니지 않나. 과거 역사 탓에 뿌리 깊게 상대 국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민간 교류는 계속됐으면 한다.”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본다는데.

“남편이 ‘아내가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 한국어도 잘한다’고 주변에 말하곤 했다. 립 서비스 차원이었는데 그 탓에 그렇게 알려졌다. 오히려 오래 공부했는데도 아직 이 수준이라, 부끄럽다. 기회가 되면 몇 달간 한국 유학 가서 어학 공부하고 싶다.”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한국말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말 잘 못해요’라고 했다.)

- ‘오징어 게임’은 봤나.

“넷플릭스로 봤다. 충격이었다. 솔직히 전 세계에 오징어 게임이 유행하는 게 조금 무섭기도 했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같은 한국 드라마가 좋다. 사랑의 불시착은 남편과 둘이서 봤다.”

-도쿄에서 김장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지난달에도 주일 한국 대사관의 김장 행사에 갔다. 딱히 정치적인 우호 메시지를 보낸다 같은 계산은 없다. 개인적으로 김치를 좋아해 김장을 담가보고 싶어서다. 본래 (아베 전 총리 지역구) 시모노세키에는 재일 한국인도 많이 살고 한국 축제도 열린다. 한국 축제 때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참석한 적도 있다. 한복을 입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다들 좋아했다.”

2024년 1월 12일 도쿄의 신바시에 있는 사회공헌지원재단의 사무실에서 만난 아베 아키에 씨./성호철 특파원

-한국 대통령 부인들과도 교류해 왔는데.

“작년 12월 한국 방문 때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만났다. 김건희 여사에겐 ‘본인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가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야당이 정권 비판의 일환으로 김 여사를 비판하는 거라면 안쓰럽다. 김정숙 여사와는 오랜 친분이다. 이번에 만났더니 ‘(경남 양산의) 평산에서 책방을 하는데 서울의 네온이 그립다’고 하더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적도 있는데.

“남편이 총리 하던 시절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꽤 했다. 이번 달에는 야스쿠니신사에서 강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이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앞에서 두 손을 마주하는 행동(합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신사는 일본의 신(神)이니까. (한국인들은) 일본의 신을 믿지 않으니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데. 미묘한 문제라서….”

-총리 부인 시절 ‘우즈’라는 이자카야(일본식 술집)를 운영했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우즈’를 시작할 때는 남편이 다시 총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도쿄에서도 사재기가 있었다. 돈이 있어도 음식을 구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야마구치현에서 쌀을 짓기 시작했다. 무농약으로 만든 쌀을 도쿄 사람들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우즈다. 총리 부인이 왜 술 파는 가게를 하느냐는 비판을 받으니 오히려 더 열심히 했다.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말이 싫어, 스스로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2022년 폐점했다. 당시 점원이 그만둔 데다 남편도 사라지니 닫을 때인가 했다.”

-현재 한국의 무엇을 좋아하나.

“박용하씨가 사망한 이후에 오랜만에 ‘좋다’고 생각한 배우는 정경호씨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너무 재밌었다. 박용하씨는 정말 응원했는데, 안타깝다. 한국 음식은 김치·잡채·전골류 모두 좋아한다. 작년 12월 한국 여행 때 아침에 시장에 가서 만둣국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베 아키에(安倍昭惠·62)

일본 최장수 총리였던 고(故) 아베 신조의 부인. 일본 과자 대기업인 모리나가제과 창업자 가문 출신이다. 광고 대행사 덴쓰에 근무하다 1987년 아베와 결혼했다. 둘 사이 아이는 없다. 아베 전 총리가 2022년 길거리 연설 중 피살되자 일본 자민당과 지역 주민들은 부인인 그가 지역구를 승계하기 바랐지만 거절했다. 한류 팬으로, ‘집안의 친한파 야당’으로 불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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