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찾는 사람들] 명상은 도구일 뿐 기독교 신앙과 충돌하지 않아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할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이 부르면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오늘을 살 것이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해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떠나기에 좋은 날이다.”
대한성공회 윤종모(75) 주교는 매일 아침 명상을 마칠 때 이런 감사 기도를 올린다. 잠들기 전에도 명상을 한 후 이 기도문을 왼다. 그에겐 명상이 곧 기도다. 윤 주교는 성공회 부산교구장(2005~2009)과 관구장(2009~2010)을 지낸 원로 성직자. 기독교 성직자로는 드물게 오랜 기간 명상 수행을 하면서 강의와 저술, 기고를 통해 명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알리고 있다.
지난주 서울 양천구 아파트 1층에 있는 자택에서 윤 주교를 만났다. 거실엔 싱잉볼 여러개가 놓여 있었고 창으론 아파트 정원이 보였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명상을 한 후 아내에게 ‘굿 모닝~’이라고 끝을 올려 인사하고 나무들에게도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작년 척추 협착증 수술 후엔 바닥에 앉는 대신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명상을 한다고 했다. 명상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자세, 장소, 시간이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 명상은 선물처럼 찾아왔다. 명상을 처음 접한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사제 서품을 받고 캐나다 에드먼턴의 앨버타대에서 영성신학 박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매년 1월 한 달간 집중 강의하는 과정이었다. 겨울엔 영하 20~40도까지 내려가고 폭설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마땅히 외출할 곳도 없었다.
숙소였던 성공회 피정수녀원은 단층 건물이었는데 북쪽 끝에 2~3평짜리 ‘명상실’이 있었다. 마른 꽃과 나뭇잎이 쌓여 있는 명상실 벤치에 앉으면 통유리창을 통해 고요 속에 설경(雪景)이 보였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그는 명상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처음엔 30분쯤 앉아 있다가 차츰 시간을 늘렸다. 5년간 겨울마다 그곳을 찾았다. 마지막엔 오전 10시쯤 앉았다가 ‘이제 뭘 좀 먹어야겠다’고 눈을 떠보면 오후 3~4시가 돼 있곤 했다. “누구의 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침묵 속에 의식이 또렷해지고 흐트러짐이 없는 마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각이 들어왔다가도 금방 사라졌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느꼈던 상처나 걱정, 생활고 같은 것을 완전히 잊고 미움과 갈등이 사라지고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 충만해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윤 주교는 부친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어린 시절 많은 상처를 받았다. 평양 출신인 아버지는 서울 종로에서 약국과 병원을 했지만 갑자기 몇 달씩 사라지곤 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워졌고, 가족이 흩어졌고, 그는 열 살 때 6개월가량 혼자 살기도 했다. 그때 겪은 두려움, 외로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에 사무쳤다. 상처는 청소년기엔 싸움으로, 이후엔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남이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면 ‘욱’ 하거나 우울해졌다. 명상은 ‘욱’과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됐다.
“우울증을 겪은 사람은 증세가 나타나려 하면 무척 겁나고 피하고 싶어져요. 명상을 하게 되면서 우울한 증세가 올 때 ‘밀어내고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안아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안아봤거든요? 그게 굉장히 효과가 있었어요. 어느 정도 예방이 된 것이지요.”
‘욱’도 마찬가지. “명상을 시작하고도 ‘욱’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데에는 10여 년이 걸렸어요. 명상을 한다고 단번에 고쳐지지는 않아요. 지금은 ‘욱’ 하는 동시에 바로 알아차리고 화를 내지 않거나 바로 사과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됐지요.”
기독교인 사이에는 명상을 배척하는 분위기도 있다. ‘명상=불교’라는 선입견도 있다. 윤 주교는 “명상은 도구일 뿐, 기독교 신앙과 충돌하지 않는다”며 “신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면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던 학생들도 학기가 끝날 때쯤엔 오해를 풀곤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역사에도 오랜 명상의 전통이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해진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라고 했다. “렉시오 디비나를 할 땐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이 있으면 읽기를 멈춥니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 문장을 되뇌며 의미가 의식 깊숙이 스며들게 하는데, 이 단계가 메디타시오(meditatio) 즉 묵상 혹은 명상입니다. 오래 묵상하다 보면 깨달은 것을 하나님, 예수님께 고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고하는 것은 오라시오(oratio) 즉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르익으면 더 이상 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는 콘템플라시오(comtemplatio)의 경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면서 들숨에 ‘그리스도여’, 날숨에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반복하는 호흡 명상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예수님도 명상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 계셨을 때, 제자들을 떠나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셨을 때에도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내가, 내 안에 하나님’을 느끼고 계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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