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49] 정당의 철학

김규나 소설가 2024. 1. 17.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키의 옷장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톰은 양복을 꺼냈다. 구두도 신었다. 톰은 갈색 실크 넥타이를 골라 정성껏 맸다. 양복이 몸에 꼭 맞았다. 디키처럼 가르마를 조금 더 옆에서 타서 넘겼다. 톰은 다시 옷장으로 시선을 돌려 맨 위 선반에 있는 모자를 꺼내 비스듬히 썼다. 정수리와 이마를 가리니 디키하고 닮아도 너무 닮아 보여 톰은 흠칫했다. 힘만 제대로 주면 눈썹까지 빼닮았다. “뭐 하는 거야?” 톰이 몸을 홱 돌렸다. 디키가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재능 있는 리플리’ 중에서

지난 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전시관, 박물관, 도서관, 동상을 세우고 공원과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영화와 도서를 제작, 영웅화 작업이 한창이다. 건국과 발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정당성이 그들 진영에 있다는 뿌리 다지기의 일환이다. 문재인 전 정권 수장도 DJ의 포용과 통합을 본받자고 축사했다.

선거를 앞두면 이상한 현상이 반복된다. 진보를 표방한 좌파는 기존 주장을 강화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보수 우파는 존재 이유를 망각한다. 무관심을 깨우고 중도층 표심을 얻어야 한다며 자기 색을 희석한다. 가장 기이한 변화는 2012년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이 파랑을 버리고 빨간색 당복을 입은 것이었다. 이후 보수 정당을 대표하던 파랑은 민주당의 상징이 되었다.

지도를 그릴 때 북한은 붉은색, 남한은 파란색으로 칠한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한반도기는 파랑이다. 여기서도 대중은 혼란스럽다. 자유와 평등은 DJ 덕분이라 하고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앞장서느라 의견이 다른 신문을 배포한 자기 당원을 내치는 여당은 어떤 사상과 철학을 기반으로 나라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을까.

리플리는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그러나 리플리의 본질은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꾸다 괴물이 되어버린 존재다. 통치에서 포용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지지 기반의 집결과 통합이 먼저다. 결집력이 큰 경쟁 상대와 똑같은 주장을 한다면 흡수되어 사라질 뿐이다.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없고 경제 부흥 대통령의 기념식 한번 어깨 펴고 하지 못하는 보수 우파 진영은 야당을 보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승리를 바란다면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한다. “지금 뭐 하는 거야?”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