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49] 정당의 철학
디키의 옷장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톰은 양복을 꺼냈다. 구두도 신었다. 톰은 갈색 실크 넥타이를 골라 정성껏 맸다. 양복이 몸에 꼭 맞았다. 디키처럼 가르마를 조금 더 옆에서 타서 넘겼다. 톰은 다시 옷장으로 시선을 돌려 맨 위 선반에 있는 모자를 꺼내 비스듬히 썼다. 정수리와 이마를 가리니 디키하고 닮아도 너무 닮아 보여 톰은 흠칫했다. 힘만 제대로 주면 눈썹까지 빼닮았다. “뭐 하는 거야?” 톰이 몸을 홱 돌렸다. 디키가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재능 있는 리플리’ 중에서
지난 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전시관, 박물관, 도서관, 동상을 세우고 공원과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영화와 도서를 제작, 영웅화 작업이 한창이다. 건국과 발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정당성이 그들 진영에 있다는 뿌리 다지기의 일환이다. 문재인 전 정권 수장도 DJ의 포용과 통합을 본받자고 축사했다.
선거를 앞두면 이상한 현상이 반복된다. 진보를 표방한 좌파는 기존 주장을 강화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는데 보수 우파는 존재 이유를 망각한다. 무관심을 깨우고 중도층 표심을 얻어야 한다며 자기 색을 희석한다. 가장 기이한 변화는 2012년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이 파랑을 버리고 빨간색 당복을 입은 것이었다. 이후 보수 정당을 대표하던 파랑은 민주당의 상징이 되었다.
지도를 그릴 때 북한은 붉은색, 남한은 파란색으로 칠한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한반도기는 파랑이다. 여기서도 대중은 혼란스럽다. 자유와 평등은 DJ 덕분이라 하고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앞장서느라 의견이 다른 신문을 배포한 자기 당원을 내치는 여당은 어떤 사상과 철학을 기반으로 나라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을까.
리플리는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그러나 리플리의 본질은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꾸다 괴물이 되어버린 존재다. 통치에서 포용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지지 기반의 집결과 통합이 먼저다. 결집력이 큰 경쟁 상대와 똑같은 주장을 한다면 흡수되어 사라질 뿐이다.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없고 경제 부흥 대통령의 기념식 한번 어깨 펴고 하지 못하는 보수 우파 진영은 야당을 보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승리를 바란다면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한다. “지금 뭐 하는 거야?”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택시만 노려 고의사고 내고 합의금 뜯은 전직 택시기사, 구속 송치
- 일본, 시진핑 방일 적극 추진... 韓中 고위급 교류 차질 빚는 틈 노릴 수도
- 설 맞아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할인율 10%→15% 상향
- 영토의 98% 내놓으라는데, “그린란드 주민이 결정할 일” 덴마크 속내는
- 검찰, 오송참사 이범석 청주시장 기소...중대재해처벌법 첫 사례
- ‘송파 무인창고서 수십억 원 절도’ 40대 男...첫 재판서 혐의 일부 인정
- 대법 “‘세월호 7시간’ 청와대 문서 목록 비공개 결정, 다시 판단하라”
- 바이든 “대선 완주했다면 이겼을 것...86세 대통령 되고 싶진 않았다”
- 클리블랜드, 오클라호마시티 꺾고 11연승 질주…NBA 동·서부 1위 맞대결 승리
- 경찰, ‘尹 체포방해’ 경호처에 26명 신원 확인 요청 공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