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T&G, 담배 성분 누락 자료 제출… 美법무부 조사 받아
세계 5위, 국내 1위 담배 업체인 KT&G가 경영상 중대 실책으로 미 법무부와 식품의약국(FDA)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담배와 관련한 미 보건 당국의 규제를 위반하고, 담배 제품 승인과 심사 과정에서 잘못된 자료를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인해 미국 주(州)정부에 낸 1조5400억원의 장기예치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예치금은 미국에서 담배를 판매하는 업체의 잘못으로 흡연자의 건강이나 신체상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주정부에 맡겨두는 돈이다. 담배 판매금의 일부를 내며, 큰 문제가 없다면 납부일로부터 25년 뒤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KT&G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장기예치금은 작년 3분기 기준 1조5412억8400만원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 진출한 KT&G는 1~2년 뒤부터 이 돈을 돌려받아야 하지만 돌발 변수가 생긴 것이다.
◇KT&G, 1조5400억 반환에 변수 생겨
16일 본지가 입수한 KT&G 이사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KT&G 미국법인은 2007년과 2011년 미국에서 담배 카니발과 타임을 출시했는데, 이 담배들에 포함된 다이아세틸(Diacetyl), 레불린산(Levulinic acid) 등 유해물질 성분을 FDA에 제출한 서류에 누락했다. 문건에는 “(담배) 실물에 포함된 성분을 안전성 및 사회적 이슈를 이유로 서류상으로만 삭제”라고 표기돼 있다.
KT&G는 미국 담배 규제의 핵심인 ‘상당한 동일성(SE·Substantial Equivalance)’ 원칙을 어긴 혐의도 받고 있다. SE는 담배 신제품의 성분이 이전에 출시된 제품과 동일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문건에 따르면 KT&G는 2017년 ‘디스’를 출시할 때 해당 원칙을 위반했다. 또 2011년 카니발·타임에 사용된 재료를 2007년 카니발 때부터 써온 것처럼 자료를 수정했고, 2018년 미국 네브래스카 등 주정부에 등록할 때 2017년 디스의 기준 제품이 2007년 카니발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는 내용도 문건에 담겼다. KT&G 내부 관계자는 “인체에 직접 영향을 주는 담배 성분과 관련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어서 향후 장기예치금 반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美담배 규제 어긴 정황 다수
이 문건은 미국 정부의 조사 및 자료 제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KT&G가 선임한 국내 대형 로펌 A사가 작성해 이사회에 보고한 것이다. A로펌은 보고서 작성 경위에 대해 “(미국 정부의) 문서 제출 명령 대응 과정에서 2011년 카니발·타임, 2017년 디스 제품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이메일, 회의록 등을 발견(했다)”고 적었다. 로펌 조사는 R&D(연구·개발), SCM(공급망 관리), 글로벌 본부 등에서 18명을 대상으로 2021년 9월부터 12월 초까지 이뤄졌다. A로펌은 보고서에서 “FDA에 대한 부정확한 서류 제출, 실물 임의 변경 및 동일성 위배와 관련된 논의 및 실행은 대부분 R&D 기술협력팀이 주도했다”고 했다.
로펌이 해당 보고서를 이사회에 보고한 2021년 12월 14일 KT&G는 갑자기 미국 사업을 접겠다는 내용의 ‘영업 정지’ 공시를 냈다. KT&G는 당시 “미국의 규제 강화, 시장 경쟁 심화 등에 따라 미국 사업에 대한 재검토 필요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KT&G는 분기별 공시 등을 통해 “미국 내 판매 중인 담배 제품의 규제 준수 현황에 관한 포괄적 문서 제출 명령을 받아 조사받고 있으며, 조사의 최종 결과 및 그 영향은 현재 예측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왜 문서를 내야 하고 조사를 받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 KT&G 측은 이날 “미 법무부가 조사 중 사안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부여하는 점을 고려해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은 사실이 없고, 현재까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예치금은) 납부 시기에 따라 2025년부터 각 금액을 순차적으로 반환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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