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불경보살(不輕菩薩)
타인을 부처로 공경할 때 내면의 악 물리칠 수 있어
박상호 시인·고향의봄 회장
신과 악마와 부처는 어디 있는가? 천국과 지옥은 어디 있는가? 숱한 철학자와 종교인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사색을 통해 많은 주장을 해 왔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이 말뜻은 인간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던 고정관념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악마에 대해 논해 보도록 하자. 히틀러가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살해했던 것은 악마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중일 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 제국이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강간하고 학살한 난징 대학살도 악마의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십자군 원정 때 이슬람 교도를 약 7만 명이나 학살하고 어른들은 솥에 삶아 먹고 어린아이들은 쇠꼬챙이에 끼워 구워 먹는 행위의 잔학함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다.
더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 행위는 마녀사냥이다.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는 스페인에서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30만의 여성을 산 채로 화형에 처한 시대 상황을 보고 세상이 미쳤는지, 그 상황에 분노한 자신이 미쳤는지에 대해 풍자한 소설이다. 특히, 마녀라고 지칭 된 여성들은 남편이 없거나 불우한 사회의 약자였다고 한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며 고문해 통증조차 못 느낄 정도로 고통을 주었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수많은 강철못이 박혀 있는 관에 사람을 넣고 뚜껑을 닫아 강철못이 온몸을 찌르게 하거나 머리를 기구 안에 넣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려 머리가 점점 짓눌리게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고문을 자행하고 산 채로 화형에 처했다.
마녀라고 지칭된 사람이 정말 악마인가? 종교 재판관이 악마인가? 마녀라고 지칭된 사람들의 재산까지 몰취하여 고문 집행과 화형 집행 비용, 그리고 인건비 등으로 사용한 것을 볼 때 현재의 강도 살인범보다 몇 배나 더 악랄한 행위를 했다. 그 유명한 성녀 잔 다르크도 마녀로 화형에 처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악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사악한 마음 속에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신과 부처도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을 신과 부처로 공경하는 것이 이런 악마의 행위를 척결할 수가 있다고 본다.
묘법연화경의 상불경보살품에 보면 옛날에 ‘위음왕여래’라는 부처가 있었다. 그 부처가 입멸한 뒤, 정법시대가 지나고 상법시대 말기가 되었을 때 불경보살은 남녀를 불문하고, 출가 재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며 예배했다. “나는 깊이 그대들을 존경하도다. 감히 경멸하지 않느니라. 까닭은 무엇이뇨.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성불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하며 예배행을 계속했다. 일체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는데 불경보살은 그 ‘불계’를 예배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생명 존엄사상의 극치라고 판단된다.
불경보살이 “나는 그대들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고 예배하므로 별명을 불경이라고 했다. 그런데 교만하고 권위 의식에 가득 찬 사람들은 남루한 불경보살을 보고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어디서 온 게야! 이 무지한 놈!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그런 거짓말뿐인 기별(예언, 보증) 따위를 상대할 성싶은가.” 요컨대, “너는 부처도 아닌 주제에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다 없다 하면서 잘난 체하고 있다. 자기 주제도 잘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언제나 바보 취급’을 했다. 그러한 교만한 사람들이 냉소하더라도 불경보살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어떤 욕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고 “당신은 반드시 부처가 됩니다”고 되풀이해 말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불경의 인내는 몇 년이고 계속되었다. 어떤 때는 지팡이나 몽둥이로 때리고 기와조각이나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불경보살은 재빨리 피해서 저 멀리서 또다시 큰 소리로 “당신은 반드시 부처가 됩니다”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불경보살이 임종하려고 할 때 허공 속에서 위엄왕불이 앞서 설하신 법화경을 듣고 모두 다 능히 수지하여 육근이 청정하게 되는 대공덕, 다시 말하면 인간 혁명의 실증을 나타냈으며 위대한 성불의 공덕을 받았다. 이것은 석존 전생의 모습이었으며, 그때 불경보살을 박해했던 사람이 지금 영취산에서 석존에게 법화경 설법을 듣고 있는 발타바라 등 오백 보살과 사자월 등 오백 비구, 니사불 등 우바새로서 전생의 인연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모든 중생에게 위대한 생명과 위대한 불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 모두를 존경해야 하고 어떤 악과도 결단코 맞서 싸워 타파하고 악조차도 선의 편으로 만든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악마와 부처가 공존하고 있다. 생명을 존중하고 상대의 불성을 존경함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고 보며 인류의 행복과 전 세계의 평화를 구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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