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3] 눈치를 볼 필요
일본 방송을 찍었다. 일본 시청자에게 한국 영화를 해설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한 회차에서는 군대 소재 영화를 묶어서 소개했다. 영화 이야기는 적당히 하고 한국인이라면 치를 떨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같은 걸 주절거렸다. 피드백이 왔다. “120% 만조쿠데스.”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징병제 없는 나라 사람들은 한국 군대 이야기에 환장을 한다. 오랜 경험이다.
몇 년 전부터 외국 매체들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다. K컬처가 폭발하니 외화벌이 기회도 생긴다. 가발 팔아 외화 벌던 시절 태어난 나로서는 감개가 무량하다. 환율이 워낙 높아진 터라 원고료가 한국보다 딱히 높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평생 애국 한 번 못 해본 나로서는 나라에 진 빚을 이렇게라도 갚게 됐다. 영광이다.
서울올림픽 슬로건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다. 세계의 촌구석에서 벗어나려는 당대의 욕망이 느껴지는 슬로건이다. 30여 년 만에 세계는 정말 서울로 오고 서울은 세계로 가게 됐다. 한국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해외 매체에 실리는 시대다. 한국의 스캔들은 세계의 스캔들이 된다. 세계의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우리는 세계의 눈치를 봐야 한다. 나쁜 일은 아니다. 세계의 눈치를 볼 자격이 생겼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얼마 전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선균 죽음에 대해 “많은 한국 영화인 경력이 도덕성의 제단에서 산산조각 났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인은 이해하기 어렵지만”이라는 표현이 명치를 때렸다. 미국 오스틴 비평가협회는 이선균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오스카 수상작 배우가 겪은 납득하기 힘든 죽음에 대한 일종의 항의다. 직장 상사뿐 아니라 세계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시대가 왔냐 불평하는 독자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놈의 눈치(Nunchi) 역시 ‘뉴욕타임스’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지고 있는 K컬처다. 세계는 고인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한국의 눈치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선균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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