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과의 ‘문과 침공’ 갈수록 심각… 교차지원 막는게 옳아
올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 1등급을 받은 수험생의 96.5%가 이과생이라고 한다. 수학 선택 과목 중 주로 이과생들이 응시하는 미적분과 기하를 택한 수험생은 55% 정도인데, 이들이 수학 1등급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 것이다. 작년의 81.4%보다 훨씬 많아졌다. 상대적으로 쉬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문과생은 1등급 비율이 그만큼 줄어들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제로 미적분 표준점수 최고점은 148점인 반면 확률과 통계는 137점으로 무려 11점이나 차이가 났다. 대다수 대학이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를 반영하는데, 어려울수록 올라가는 표준점수 특성상 수학 과목에서의 압도적인 점수 차이를 무기로 대학 입시에서 이과생들의 이른바 ‘문과 침공’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 불보듯 뻔하다.
문·이과 특성을 떠나 교차 지원이 가능하다 보니 이제는 이과생들이 유리한 수학 점수로 문과 계열에 대거 지망해 문과 지망생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2023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인문∙사회 계열 정시 최초 합격자 중 이과생 비율이 51.6%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문과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망한다는 경제학부나 경영학부에서도 합격자 3명 중 2명 이상이 이과생이었다고 한다.
내년 입시에서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이 더욱 가속될 경우, 문과생들은 문과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해 본의 아니게 재수를 택하고, 이과생들은 이점을 최대한 살려 문과 계열 학과에 합격했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반수(半修)를 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이과 계열상 특성이 전혀 다른데 대학들이 문·이과 교차 지원 허용으로 문과를 죽이는 게 문∙이과 통합 수능인지 반문하고 싶다.
교육부는 걸핏하면 선택 과목 간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과목별 출제위원이 다른데 어떻게 난도가 똑같을 수 있겠는가. 이로 인해 공정성 시비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없었던 문·이과 간 갈등과 마찰이 생기고 문과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재수를 택하는 일도 발생한다. 문과생들을 낙오자로 만들지 않는 것은 수능에서 ‘킬러 문항’ 배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차라리 과거처럼 대학이 문·이과 계열별로 모집하고 교차 지원을 없애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과는 어차피 수학에서 미적분과 기하가 필요하고 문과는 그렇게 필요하지 않으므로 각 대학에서 아예 교차 지원을 허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충분한 변별력을 갖췄다고 자화자찬하는데, 이를 믿는 수험생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역대급 ‘불수능’으로 수험생을 혼란에 빠뜨리고 되레 준(準)킬러급 문항들이 등장해 새로운 사교육이 번창하고 정부 정책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차라리 수능 난도를 낮추는 게 날로 증가하는 사교육을 줄이는 현명한 방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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