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너 범인 해라
최근 수사물이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시사프로그램까지 접수했다. 특히 실제 경찰들이 나와 자신이 해결한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털어놓는 콘텐츠는 그중 단연 인기다. 혐의를 벗어나고자 머리를 굴리는 범인과 진범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수사를 이어가는 경찰의 두뇌싸움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수사현장을 보여준다.
결과는 늘 그렇듯 권선징악으로 끝나지만,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 흘린 피와 땀이 주는 감동은 압도적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스타 셰프들과 특수부대 출신들이 방송가를 장악하며 전문직업인과 방송인간의 경계를 허물었듯, 이제 범죄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현직 경찰들의 시대가 오는 듯하다.
하지만 미디어 속 경찰의 빛나는 수훈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들도 있다. 특히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경찰이 고3 남학생을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한 범인으로 지목한 후 ‘혐의 있음’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 보도됐다. 사건 발생 시간에 해당 학생은 학원에서 수업 중이었고, 수업을 마친 후 곧바로 집으로 왔음에도 느닷없이 변태로 지목된 것이다. 당시 학생의 부모님은 관련 CCTV를 직접 확보해 실제 아들이 집으로 오는 모습과 함께 진범과 아들의 인상착의가 다르다는 점까지 알렸지만 오히려 담당 경찰은 “그걸 제가 왜 봅니까”라며 “아들이 참 용의주도하네요”라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의 무고함을 위해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그럼에도 이를 무시한 채 ‘넌 반드시 범인이어야 해’라는 담당 경찰의 외고집은 가히 충격적이다.
당연하게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성범죄자로 몰린 학생과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에 방송사 측에서 해당 경찰의 입장을 들으려 연락했지만 “현재 출장 중이고 언제 복귀할지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기약 없는 출장’이란 핑계로 언론을 피하는 모습은 비루하다. 만약 본인의 자녀였다면 용납될 수 있는 수사인지 되묻고 싶다.
경찰의 매서운 눈과 동물적인 감각은 분명 수사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너는 반드시 범인이야’라는 확증편향이 경찰의 공권력과 결합한다면 그땐 누군가의 인생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출장이 끝난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어린 학생에게 “내가 틀렸다”며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문득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스파이더맨 속 대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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