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통일·동족 개념 지워야”… 옛 동독 같은 ‘자멸의 길’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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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헌법에서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명기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은 특히 선대(先代)의 남북 합의를 부정하고 그 상징물까지 철거할 것을 지시하며 "공화국의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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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발언은 작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래 헌법까지 그에 맞춰 개정함으로써 남측과의 단절을 되돌릴 수 없는 확고한 노선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해안포 사격과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대남 정책과 이념, 역사까지 바꾸는 노선 변경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대남 대화기구와 선전매체를 정리한 데 이어 할아버지 김일성의 ‘조국통일 3대 원칙’ 삭제, 나아가 아버지 김정일의 대남 성과를 상징하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까지 지시하며 선대의 유산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 같은 김정은의 노선 전환은 한미를 동시에 위협하는 핵무장을 이뤄냈다는 자신감, 그리고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등을 통해 신냉전의 유리한 국면에 올라탔다는 정세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더욱이 4월 한국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올해는 정치적 유동성의 시기인 만큼 국제정세의 판을 흔들 절호의 기회라는 계산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처럼 무모해 보이는 호전성의 근저엔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내부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공세야말로 주민들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한 독재체제의 만능 수법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통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옛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자멸적 시도와 흡사하다. 동독은 1970년대 들어 헌법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 노력’ 조항을 삭제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국가(國歌)의 제창을 막기도 했다. 나아가 ‘독일(Deutschland)’이란 단어 사용조차 꺼리면서 독일은 곧 서독과 동의어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서독은 일관되게 ‘독일 민족은 하나’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통일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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