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당의 “독립만세”[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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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광복이 됐을 때,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것은 일본이 내선일체를 도모한다며 건국 신화의 태양신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신주를 받들도록 강요한 사당이었다.
누구든 그 앞을 지날 때는 절을 해야 했고, 매월 8일에는 면 단위 기관장들과 직원들과 학생들이 신사당 뜰에 모여 손뼉을 세 번 치고 절을 하는 의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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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쓴 사람은 열세 살 소년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1942년 어느 날 밤, 작은 도끼를 들고 신사당을 부수러 갔다가 뜻대로 안 되자 위패를 집으로 가져왔다. ‘천조황태신궁(天照皇太神宮)’이라고 쓰인 겉봉투를 벗겨내자 은행나무 판자가 나왔고 거기에 끝이 들쑥날쑥한 백지 한 겹이 길게 붙어 있었다. 그는 먹을 갈아 그 백지에 ‘대조선독립만세’라고 썼다. 그리고 위패 봉투에 집어넣고 신사당에 갖다 놓았다. 그러니 이후로는 참배객들이 조선 독립을 기원한 셈이었다. 발각됐다면 소년의 집안 모두가 뼈도 못 추렸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 일과는 별개로 소년은 열네 살 때인 1943년, 형 대신 납치당해 홋카이도에 있는 미쓰이(三井) 회사의 백금 광산으로 끌려갔다가 광복 이듬해에 돌아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노예로서의 광산 노동과 야만적인 폭력, 탈출 등 자신이 겪은 일들을 소설의 형식으로 증언했다. 지재관의 ‘도벌에게 짓밟힌 엽전’이 그것이다. 그의 아들인 오페라 작곡가 지성호는 아버지의 증언이 묻히는 게 안타까웠는지, ‘아버지는 14세 징용자였다’라는 좀 더 정교한 책으로 ‘다시’ 썼다. 강제징용이 없었다는 일본의 거짓말은 그 생생한 증언 앞에서 파랗게 질린다. 이러한 증언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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