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바이든·날리면 판독 못 하면서 정정보도하라니"

강아영 기자 2024. 1. 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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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MBC '윤 대통령 비속어' 보도, 1심서 정정보도 판결

2022년 9월 미국 뉴욕 방문 당시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과 관련, 지난 12일 법원이 MBC에 정정보도를 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언론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이 외교부 주장만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MBC 보도를 ‘허위’로 단정해서다. 언론계는 판결문 전반의 논리가 모순적이라며 ‘희대의 소송에 희대의 판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또 발언의 당사자가 아닌 정부부처가 이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지, 진실의 증명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과 관련, 법원이 모두 외교부 손을 들어준 데 대해서도 크게 우려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은 음성 감정인조차 ‘바이든은’인지 ‘날리면’인지 판독 불가 결정을 내렸음에도 재판부가 MBC 보도를 허위라고 단정한 점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과 ‘날리면’ 중 어떤 발언을 한 것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론에선 “허위사실을 적시해 원고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MBC에 ‘사실 확인 결과, 윤 대통령은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는다’라고 정정보도할 것을 주문했다. 기술적 분석으로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발언을 단정적으로 보도했으니 허위라는 것이다.

반면 언론계는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정보도를 할 수 있느냐 되물었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 발언하지 않았다고도 단정할 수 없고, 진실 규명이 없거나 다툼이 있을 땐 반론보도를 해야 하며, 그래서 정정보도 청구 자체는 기각돼야 한다는 논리다. 경향신문은 이와 관련 15일자 사설에서 “재판부의 판단은 극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최대 쟁점에 대해 진실이 가려지지 않았는데 재판부는 무슨 근거로 허위보도라고 단정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답이 없는데 오답이라고 판정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실의 주장을 실어주는 ‘반론보도’라면 모를까 MBC에 정정보도를 주문한 것은 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선 진실의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큰 쟁점이었다. 통상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경우엔 그 보도가 진실이 아니라고 증명할 책임은 청구자에 있다. 즉, 이 사건의 경우 외교부다. 다만 재판부는 논란이 된 사실관계가 과학 분야에 관한 것이고, 여러 한계를 고려할 때 “청구자에게 사회통념상 해내기 어려운 증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증명할 책임을 MBC에 돌렸다. 과거 광우병과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같은 법리가 적용됐는데, 이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MBC는 그러나 “유례가 없는 것이고, 법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MBC는 “원심이 인용한 대법원 판결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광우병 발병 위험이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관한 것이었다”며 “그밖에 통상의 소송에서 입증 책임 전환이 문제되는 과학적 사실이란 ‘특정한 화학물질이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차량 사고가 급발진으로 인한 것인지’ 등 말 그대로 현재 과학기술로는 그 진실 여부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본 사안의 쟁점은 단지 대통령이 미국 국회를 상대로 욕설 및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에 관한 것”이라며 “이러한 원심의 결론에 대해선 납득하기 어렵고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도 법리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선 외교부가 MBC 보도에 정정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컸다. 비속어 발언의 당사자는 윤 대통령인데, 정작 보도에선 언급도 없는 외교부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사자 적격성’ 문제가 불거졌다. 재판부는 그러나 비속어 발언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윤 대통령이 행사장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행해졌고, 이 회의는 외교부 소관 업무이며, 국회가 이 사건 등을 이유로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기까지 했다며 외교부가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언론계는 외교부에 청구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다. 과거 박근혜, 문재인 정부 하에선 대통령을 대신해 대통령실이 구한 정정보도 청구가 기각됐기 때문이다. 실제 법원은 “당사자 능력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권력자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언론에 대한 소송을 남발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적격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판례를 여럿 남겼다.

한편 판결 이후 근본적으로 이 사건의 본질을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대통령이 공식 행사장에서 비속어를 내뱉고 지금까지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문에 따르면 ‘바이든-날리면’은 판독 불가였지만 ‘XX’, ‘쪽팔려서’라고 발언한 사실은 확인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12일 성명에서 “처음부터 이 문제의 해법은 명확했다”며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의 여부와 비속어 발언의 맥락은 그 발언자인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로 끝낼 수 있었다. 문제의 진원지인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기관을 앞세워 법원에 보도 내용의 검열과 정정보도를 요구한 것 자체가 심각한 언론자유의 침해”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통령실이 법원 판결을 두고 “공영이라고 주장하는 방송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 절차도 없이, 자막을 조작하면서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허위보도를 낸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란 입장을 내놓으면서 반발이 더욱 커졌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같은 날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 중 하나는 외교 현장에서 윤 대통령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함으로써 국가의 품격을 크게 훼손했다는 것”이라며 “MBC에 대한 비난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법원도 인정한 욕설과 비속어 사용에 대해 대국민 사과부터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지적했다.

MBC는 이날 1심 판결에서 정정보도 선고가 나오자 즉각 항소했다. MBC는 “증거주의 재판이 아니라 판사의 주장일 뿐인 이번 판결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잘못된 1심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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