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50년간 지킨 ‘김일성 원칙’도 버려…‘미치광이 전략’ 왜 쓰나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김제관 기자(reteq@mk.co.kr) 2024. 1. 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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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총선·미국 대선 겨냥
1972년 남북공동성명 부정
대남 교류기구 3곳 폐지하고
평일 통일기념탑 철거 지시
무효선언 서해 NLL 인근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 커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회담과 남북교류업무를 담당해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민족·통일’ 개념을 내던졌던 북한이 연초부터 잇단 도발로 남북관계의 시계를 5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는 통미봉남으로 회귀하는 동시에 한국에 대한 구두 협박 수위를 하루가 멀다하고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16일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노골적인 협박성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정세 불안의 원인을 거듭 한국과 미국에 떠넘기며 자신들의 핵·미사일 무력시위를 정당화했다. 그는 “나날이 패악해지고 오만무례해지는 대결광증 속에 동족의식이 거세된 대한민국 족속들과는 민족중흥의 길,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남 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조직했던) 관련단체들을 모두 정리한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불가결의 공정”이라고 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민족경제협력국·민족경제협력국·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 기구 폐지 방침을 정당화하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헌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뤄놓은 남북관계 성과까지 부정했다.

그는 헌법에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한다는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며 당장 다음 최고인민회의 때 이 문제를 다루라고 지시했다. 이어 헌법에 영토 규정을 명시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북한)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헌법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등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삭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는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최초로 1972년 함께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의 핵심 개념이다. 김 위원장은 조부인 김일성 시대에 만든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까지 지시하며 ‘남북관계사(史) 지우기’에 본격 착수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연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은 더 이상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홍 위원은 이번 김 위원장 연설은 ‘대미(對美)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고 봤다. 북한이 앞서 핵무력 정책을 헌법화하고 이번에 민족관계를 폐기한 것도 모두 차기 미국 행정부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의도라는 게 홍 위원의 판단이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광인 전략(Madman Strategy)’를 택하며 미국의 차기 대선주자들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5일 ‘위대한 전환, 승리와 변혁의 2023년’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방영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샛별-9형’ 공격형 무인기를 시찰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조선중앙TV 갈무리]
다만 김 위원장은 “우리가 키우는 (군사적인)힘은 일방적인 ‘무력통일’을 위한 선제공격 수단이 아니라 철저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꼭 키워야만 하는 정당방위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언한다”며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한미)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것을 우리의 나약성으로 오판하면 절대로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아직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상 요구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경제난을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방들에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되는 공장다운 공장이 하나도 없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비핵화보다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주력하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되고 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최근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우발적 핵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며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 전환을 권고했다.

갈루치 교수는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며 “핵무기를 사용할 의사가 있다는 북한의 수사법이 우리로 하여금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작다는 확신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갈루치 교수는 지난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로 대북협상에 나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포기와 대북 경수로 지원을 맞교환하는 내용의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낸 인물이다. 그는 기고에서 “미국은 북한과 진심으로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비핵화를 첫걸음이 아닌 더 장기적인 목표로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들은 18일 서울에서 만나 잇따른 북한의 도발과 북러 간 군사협력 강화 등에 대한 대응방안을 협의한다. 협의에는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정박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관리, 나마즈 히로유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참석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3자 협의에 앞서 한미(18일), 한일(17일) 간 양자협의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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