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불변의 주적” 윤석열 “몇 배로 응징”

허백윤 2024. 1. 1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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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치닫는 남북관계
金 “전쟁 땐 무력으로 점령·수복”
NLL 부정하며 도발 가능성 높여
尹 ‘적대적 두 국가 규정’ 강력 비판
“北, 반민족 집단이라는 사실 자인”
강대강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정권을 ‘반민족적·반역사적 집단’으로 규정하고 도발 시 강력 응징 방침을 재확인했다. 왼쪽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이라며 전쟁이 일어나면 무력으로 점령·수복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으로 전환한 뒤 대남기구를 잇달아 폐지한 데 이어 통일과 민족 개념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새해 들어 처음으로 북한에 직접 경고하며 강경한 대응 원칙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갖고 “근 80년간의 북남 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나날이 패악해지고 오만무례해지는 대결광증 속에 동족의식이 거세된 대한민국 족속들과는 민족중흥의 길,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며 “북남 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 기구로 내왔던 우리의 관련 단체들을 모두 정리한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 불가결의 공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교전국’으로 재정의한 뒤 북한은 연초부터 위협 강도를 높이며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를 없애는 데 주력해 왔다. 새해 첫날 최선희 외무상 주도로 대남기구 정리 작업을 시작했고 대남 선전매체 접속을 끊는가 하면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 기구였던 6·15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도 정리했다. 전날엔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 회담과 교류협력을 담당해 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의 폐지도 결정했다. 대남정책과 공작 기능을 맡아 온 통일전선부도 조만간 폐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과는 교류·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전쟁 협박’ 北최고인민회의… ‘경계 근무’ 북한군 초소 - 지난 15일 북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짓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16일 경기 파주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의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특히 헌법에서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한다는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며 ‘적대국’ 관계를 헌법에 명문화하도록 했다. 선대의 통일 유훈인 ‘조국통일 3대 원칙’까지 폐기하겠다는 것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며 무력 적화통일의 의지도 헌법에 못박겠다고 공언했다. 점령·수복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원래 북한 영토였던 한반도를 국가 간 전쟁으로 흡수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도 풀이된다. 다만 김 위원장은 개정 헌법을 이번 최고인민회의가 아닌 ‘차기’로 넘겼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대내외 반응을 봐 가면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도 한층 고조시켰다. 김 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와 같은 영토 개념을 헌법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통일·화해·동족 등의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며 사실상 처음으로 선대의 대남 기조와 통일 관련 업적들도 뒤집었다. 김일성 주석의 통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평양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철거하라고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인 경의선 북측 구간과 접경 지역의 남북 연결 사업도 회복 불가하도록 완전한 단절과 철저한 분리를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재래의 위장 평화 전술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북한 도발에 대한 강경 대응 원칙을 재차 천명했다. 윤 대통령은 “도발 위협에 굴복해 얻는 가짜 평화는 우리 안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며 “우리 국민과 정부는 하나가 돼 북한 정권의 기만전술과 선전, 선동을 물리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에 대해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에 대해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의 근간에는 체제에 대한 불안감과 대남정책에서의 자신감 결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흡수통일 우려 등이 있다고 본다”며 “대내적으로 계속된 경제 제재와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내부 불만이 쌓였고 이를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또 “대남 노선의 변경 책임을 우리 정부로 가중시켜 사회 내부 분열을 조장하려는 심리전의 일환”이라고도 했다.

허백윤·안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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