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들’만 골라 찍어낸 회사

백경열 기자 2024. 1. 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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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조양·한울기공 “경영 악화”…직원 12명 해고
노동자 “노조 파괴·부당 해고” 고발…노동청·경찰 수사
지난 11일 대구고용노동청 앞 천막에서 조양·한울기공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에 나서게 된 이유 등을 말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대구 수성구 대구고용노동청 앞에 흰 가림막으로 뒤덮인 대형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간이침대와 침낭 등이 놓여 있었다. 난로 1대가 천막 안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지만 천막 틈으로 이따금씩 들어오는 찬 바람이 온기를 앗아갔다.

노동자 장영주씨(45)는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리고 길바닥에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면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자체를 꺼려한 회사가 노조원들만 강제로 휴직시킨 데 이어 해고까지 했다”며고 말했다. 이어 “우리처럼 작은 회사 노동자들도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조를 꾸리고 목소리를 내는 게 옳다고 생각해 거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폐쇄 사태를 빚었던 대구 한 농기계 부품회사의 노조 결성 움직임(경향신문 2023년 6월9일자 12면 보도)이 결국 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로 비화됐다. 작년 8월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노사간 고소·고발까지 번져 수사가 진행 중이다.

16일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따르면 농기계 기어펌프 제조회사인 ‘조양’과 자회사 ‘한울기공’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노동자 12명을 해고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지난 4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해고자들은 모두 금속노조 대구지부 조양·한울분회에 소속돼 있다. 사측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들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2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이들은 사측의 해고 조치가 정리해고의 정당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노조파괴를 위한 부당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해고 대상에는 노조 부분회장과 사무장, 대의원 등 핵심 간부가 포함돼 있다.

현재 경북지노위와 대구고용노동청, 경찰 등은 노조와 사측이 제기한 고발 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대구고용노동청 서부지청은 지난해 7월 조양 대표이사를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송치했다가 보완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지난해 9월 회사 대표이사가 가족들을 사내이사로 등재시켜 부당이득을 편취했다며 노조 측이 고발한 건에 대해서는 달성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일부 노동자가 회사 자료를 고의로 삭제했다며 사측이 문제 제기한 사건은 최근 기소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조양·한울기공은 전 직원이 29명에 불과한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노동자들은 지난해 5월 회사와 임금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갈등을 빚어 103일간 파업했고,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섰다.

노조는 그해 8월 파업을 중단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사측에 전했지만, 사측이 협의 없이 노조원을 중심으로 순환휴직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휴직 대상 24명 중 비노조원은 2명에 불과했다. 순환휴직이 끝나자마자 사측은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손기백 민주노총 조양·한울분회장은 “사측은 노동시간 단축이나 휴직·휴업 등을 고민하지 않고 정리해고를 강행했다”면서 “업무 성과가 아닌 노조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한 것은 ‘노조파괴’를 위한 움직임이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양·한울노조는 조합원 12명이 회사에 복귀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대표이사의 구속수사도 촉구하고 있다.

회사 측은 파업 이전과 비교해 물량이 약 30%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경영이 어려워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 관계자는 “해고 사태를 피하기 위해 휴업 등 노력을 벌였고,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노조 측 의견을 물었다”면서 “근태와 징계 여부, 입사 시기, 직무능력 등을 고려해 구조조정 대상자를 가렸을 뿐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선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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