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일체감 선사하는 고전의 힘… 죽을 때까지 번역할 것” [마이 라이프]

김용출 2024. 1. 1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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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오뒷세이아 완역한 이준석 방송대 교수
故 천병희 선생 이후 40여년 만
용례와 씨름하며 5년간 작품 속에서 살아
낯설어도 왜곡없이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

인생을 바꾼 라틴어 수업
대학 때 히랍어 등 접한 뒤 매력에 빠져
스위스서 호메로스 연구 뒤 본격 번역
“고전번역 링 밖으로 안 나올 것”
서사 속 인물들, 삶의 궤적에 연민·공감
고전 읽어야 하는 이유? 현재적이기 때문

무슨 냄새지? 피 냄새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방 어디에선가 피 냄새가 확 끼쳐 왔다. 고개를 돌려서 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어디에서도 피가 나오는 데는 없었다. 왜 피 냄새가? 이때 자신이 전투 장면을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전장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헥토르가 죽고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절규하는 장면을 번역할 때에는 안드로마케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다.

“어느 순간 작품 속 인물로 빙의하기도 했고, 작품 속 현장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한참 번역하고 나면 침도 질질 흘리기도 했지요. 정신을 차리면 이미 버스도 끊겨 있을 때가 있었고요.”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작고한 천병희 선생의 1982년 첫 완역판 출간 이후 무려 40여년 만에 서양 고전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희랍어 완역판을 출간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고전 번역에만 정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남제현 선임기자
이준석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고전 ‘일리아스’를 번역하겠다고 구체적으로 결심한 때는 스위스 바젤대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거의 다 썼을 무렵이었다. 바젤 시내의 조그마한 집에서 아내와 아이 셋이 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논문을 준비했던 그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음 단계로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리아스’를 번역하자, 다음으로 ‘오뒷세이아’도….’

논문을 완성하고 귀국한 얼마 뒤인 2016년 1월부터,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번역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라틴어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번역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산과 절벽은 계속 나타났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스위스 친구들이나 선생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지만,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건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논쟁이 되는 구절뿐만 아니라 책에서 한 번만 나오는, 용례가 전혀 없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도 그 말뜻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었죠. 모두 혼자 딛고 일어서야 했어요. 아마 호메로스를 번역한 모든 번역자가 겪었던 과정이겠죠.”

작고한 천병희 선생의 번역판을 비롯해 언어권별 판본을 보면서 선배들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참고했다. 늘 번역을 생각했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며칠 동안 한 구절도 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관련 주석이나 논문, 책들을 읽어 보면서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리면서 자갈밭을 걸어갔다.

‘일리아스’의 1만5693행을 한 행씩 들여다보고 되뇌고 옮긴 지 2년 반 만에 마지막 행까지 마칠 수 있었다. 2019년부터 ‘오뒷세이아’ 번역에도 착수, 2년 반 만에 끝마칠 수 있었다. 서너 번의 교정 원고가 그와 출판사 사이를 왕복한 끝에 지난해 6월과 10월 ‘일리아스’(아카넷)와 ‘오뒷세이아’(〃)를 차례로 번역 출간했다. 두 고전이 한국에서 희랍어 완역으로 출간된 것은 1982년 천병희 선생의 완역 이후 무려 40여년 만이었다.

젊은 서양고전학자 이 교수가 천병희 이후 40여년 만에 완역한 두 고전은 어떻게 다를까. 야심만만한 젊은 학자의 행로는 어디일까. 이 교수를 지난 5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에서 만났다.
―천병희 선생에 이어서 40년 만의 완역인데, 특징이나 차이는 무엇인가.

“천 선생의 판본을 대체해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제가 경험한 어떤 기쁨과 아름다움을 함께 나눠 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선 호메로스를 최대한 왜곡 없이 그대로 옮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맛있게 지은 밥을 먹었는데, 만약 다른 사람의 식감을 고려해 분쇄하고 이유식으로 만들어 준다면 이것은 호메로스 자체가 아닌 저를 통해서 한 번 씹히고 소화된 호메로스일 것이다. 같은 재료이더라도 전혀 다른 것이다. 향과 식감이 조금 낯설지 몰라도 그대로 전달하려고 애썼다.”

구체적 사례를 작품 속에서 적시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일리아스’ 제3권을 편 뒤, 트로이의 파리스가 그리스 메넬라오스와 결투를 앞두고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서자 헥토르가 질책하는 대사를 가리켰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파리스, 겉모습만 대단한 녀석, 정신이라곤 온통 여색에 팔아먹은 사기꾼 놈! 차라리 네놈이 고자였다면, 그래서 짝도 못 찾고 죽어 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남들 앞에서 이 지경으로 비웃음거리가 되고 굴욕 덩어리가 되느니 차라리 그편이 훨씬 더 나았겠지.”(94쪽)

그는 헥토르의 대사 가운데 ‘고자’를 그대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천병희의 ‘일리아스’(2015년 개정판, 도서출판 숲)를 찾아보니 좀 더 완곡한 문장으로 번역돼 있었다. “가증스러운 파리스여, 외모만 멀쩡하지 계집에게 미친 유혹자여!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장가들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지. 이렇게 만인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멸시받느니 그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102쪽)라고.

새 번역에서 “네 이빨 울타리를 빠져나온 그 말은 대체 무엇이냐”라는 문장은 기존 천병희 판본에선 “너는 무슨 말을 그리 함부로 하느냐”로, 새 번역의 “날개 돋친 말을 건네었다”는 표현 역시 “물 흐르는 듯 거침없이 말했다”로 각각 번역돼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나온 것인지.

“천 선생이 ‘일리아스’의 완역판을 처음 펴낼 때는 1982년이었다. 당시에는 원전을 읽어 본 사람도 많지 않을 때였고, 완역 역시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처음이라서 고자라는 말을 써도 될까 고민을 하셨을 수도 있다. 시대 상황을 감안해 한 번 잘게 씹어 주신 게 아닌가 생각된다. 몰라서가 아니라 일단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번역하신 것 같다.”

고전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 간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마지막 10년의 51일간을 노래한 서사시이고,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오뒷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이다.

―현대인들은 왜 이 고전들을 읽어야 하는가.

“서사시는 기원전 8세기 전후 시인 호메로스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이 같은 스타일의 이야기를 처음 썼다곤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즐기고 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권에 전쟁 이야기나 모험을 하고 온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한다. 패턴은 천편일률적이지만, 호메로스의 책이 왜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모든 문학가의 꿈이나 원형이 됐는지는 설명이 필요하다. 다른 전쟁 서사시는 슈퍼 히어로물처럼 박수를 쳐 줄 수 있지만 몰입은 잘되지 않는다. 대리 충족만 된다. 하지만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다른 서사시 영웅처럼 피지컬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정서적인 면, 진노와 연민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의 처음이 진노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아킬레우스가 죽은 헥토르의 시신을 프리아모스 왕에게 내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연민을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진노에서 시작해 연민으로 가는 감정의 궤적을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다른 전쟁 서사시에서 느낄 수 없는 몰입과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항상 내 이야기가 되고 현재적이 된다. 우리가 이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이준석씨, 다음 부분부터 번역해 보세요.” 60명이 넘는 학부생이 듣는 여름 계절학기 교양 강좌인 ‘라틴어1’ 두 번째 수업시간. 강의를 맡은 강대진 교수의 입에서 갑자기 그의 이름이 떨어졌다.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강 교수가 그 많은 수강생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부도 소식이 들려오던 시절이었다. 나라도 망했고, 개인들도 망해 있었다. 대학 도서관은 독서실로 변했고. 모든 게 망해 있어서 의욕이 없었다. 1998년 제대를 하고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한국 사회는 IMF 체제였다. X세대라는 호칭까지 들으며 자유로움을 만끽한 입학 당시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존과 다른, 새롭고 의미 있는 무엇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여름 계절수업으로 라틴어1 수업을 듣게 됐다.

“수업도 재밌게 진행하셨습니다. 보통 재밌기만 한 수업은 남는 게 없는데 라틴어 수업은 남는 것도 많았어요. 정말 좋은 수업이었지요. 그때 라틴어 수업이 아니었으면 제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감이 잘 오지 않는군요.”

라틴어 수업이 재미있었던 복학생 이준석은 3학년 2학기 때에는 ‘라틴어2’를, 이어서 ‘희랍어’를, 그다음에는 ‘그리스 비극’을 차례로 들었다. 이 세계에 빨려 들어 가고 있구나. 자신의 몸이, 어떤 기운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가, 나중에 굶어 죽을 때 굶어 죽더라도 이걸 하다가 가는 게 낫겠군.

1974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준석은 2015년 스위스 바젤대에서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서양 고전 번역에 나섰다. 2018년부터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지.

“머리만 좀 하얘지지 않을까? 천 선생처럼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이다. 이미 번역할 목록들이 다 짜여 있다.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계속 번역을 하겠다. 중간에 링 밖으로 걸어 나오진 않겠다. 케이오(KO)가 돼 죽는 일이 있더라도. 본연의 일을 해야 현재도 행복하고, 나중에도 평가받을 수 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약력에 어릴 때부터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회원이었음을 적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주저주저하면서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마치 배우 한석규의 그것 같고, 턱수염은 북극곰을 때려잡고 막 돌아온 북유럽 전사의 그것 같은 그가.

“삼미 슈퍼스타즈는 어떻게 보면 패배의 화신이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어떤 달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꼭 이겨야겠다가 아니라 안 되는 것도 있고,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헥토르에 대한 연민이 언제부터 생겼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마 어릴 적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을 할 때부터 생겼던 게 아닌가 싶어요.”

헥토르에 대한 연민과 삼미 슈터스타즈 어린이회원 경력 간 방정식은 과연 변수가 몇 개이고 몇 차 방정식일까.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구실에서 서양 고전과 씨름을 하고 있는 이 교수는, 이날 비록 몸은 인터뷰 현장에 와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전의 숲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준석 교수는… ●1974년 서울 출생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회원 ●서울대 미학과 졸업, 서울대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 연구로 석사 학위, 2015년 스위스 바젤대에서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 학위 ●고전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완역 출간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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