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제1 주적’ 헌법 명기…폭주하는 북
“통일·화해·동족 개념 제거”
선대의 통일노선까지 ‘부정’
윤 대통령 “협박 안 통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헌법에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으로 명기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표현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때도 존중했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허물고, 헌법에 남측을 ‘가장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16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에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최고인민회의는 남쪽의 국회와 비슷하다.
김 위원장은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은 분단 이후 남북 당국이 최초로 통일과 관련해 합의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에 명기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이다.
김 위원장은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철거를 지시하고 북한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1980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1993년)을 뜻한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노선까지 부정한 것이다. ‘경의선의 북측 구간을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완전히 끊어놓는 것’도 지시했다.
이날 회의에서 남북회담과 남북 교류업무를 담당해온 국가기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이 폐지됐다. 당 노동당 기구인 통일전선부는 조만간 열릴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폐지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남북 간 당국 회담이나 경제협력사업, 민간교류를 재개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남측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대한민국 초토화” 같은 강경 발언으로 긴장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했고, 지난 8~9일 군수공장을 방문해서는 직접 “대한민국은 주적”이라고 했다.
“김정은, 한반도 문제를 북·미 문제로 전환…되레 방어적 의도 강해”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전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전쟁도발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배로 응징할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한을 교전국으로 보고 한반도 문제를 북·미간 문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심각한 공격용 재래식 무기 노후화와 극심한 에너지난과 식량난을 겪고 있고 중·러가 힘에 의한 한반도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준비되고 계획된 전쟁론은 설득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방어적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제 건설과 민생 개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강도 내부 결속과 자원 집중을 위한 노림수”라고 말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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