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5060 남성, 우리는 당신 없이 할 수 없어요
생명에 관한 이야기로 새해를 시작한다. 가장 많은 자살자와 높은 고독사의 비율은 5060 남성에게 나타난다. 2022년 자살자의 30%, 고독사의 50%가 5060 남성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잠시 감소했던 중장년 남성들의 자살률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사회적 삶의 정점이라는 이 시기에 왜 남성의 자살과 고독사가 유독 높을까?
50대 후반인 아버지가 자살한 것을 계기로 자살학자가 되었다는 토머스 조이너는 아버지의 자살이유를 <정점에서의 외로움>이라는 책에서 소개했다. 5060 남성들은 외로워지기 시작하고, 사회적 정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진에 시달리고, 중요한 일들에서 밀려나면서 사회적 짐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동시에 이 시기 남성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데 훈련되지 않았고 체면과 자존심을 따지면서 관계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운동가 파커 파머는 5060 남성의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살아온 반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나에 무지한 것이라고 했다. 관계의 무지에 5060 남성들의 우울, 내적 공허감, 자살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했다. 3040 시절에는 일로 관계가 맺어졌지만, 일을 그만두거나 줄인 후 관계가 필연적으로 줄어드는 5060 남성들은 외로움이나 공허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행복의 자기결정이론을 만든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행복의 요소를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라고 했다. 따라서 5060 남성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유능감은 떨어지고, 경제와 건강 문제로 인한 자율성도 감소하며, 관계성이 현저히 감소하는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KB은행 1인 가구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 남성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40대 이후부터 외로움이 가장 크고, 다음이 경제, 건강, 숙식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한다. 같은 조사에서 여성 1인 가구는 경제, 안전, 건강의 문제라고 한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결국 유력한 학자들의 발언이나 조사에 따르면 5060 남성은 외로움에 가장 부서지기 쉬운 존재이며, 사회적 소속감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소속감마저 잃기 쉬운, 관계의 끈이 가장 약한 존재다. 문제는 토머스 조이너나 파커 파머의 지적처럼 이들이 자신의 현실을 잘 수용하지 못하며 또한 우리 사회는 외로운 5060 남성 세대를 붙잡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10대의 맹랑한 허세와는 다른, 5060의 부질없는 자기애적 남성 허세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미련에 대한 집착과 관계를 풀지 못하는 고집부리기 등은 이 세대의 접근 불가와 차단의 흔한 이유이기도 하다.
관계의 장이라고 하는 장소나 카페에 가장 방문하지 않으며, 방문해도 가장 빨리 밖으로 나가는 세대라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이는 타고난 관계의 빌런이어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해 모르고, 서툴고, 배우지 않아서다. 실제로 친구도, 산악회도 모두 관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처럼 5060 남성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는 몇년 전부터 5060 남성의 자살예방을 위해 ‘우리는 당신 없이 할 수 없어요’라는 식의 체면 살리기 홍보와 넛지 전략을 통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은 관계의 학교다. 외로운 5060의 취약성을 잘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감수성에 맞게 접근하고 관계적 연약함을 이해하면서 가족, 친구, 옛 동료들과 재연결을 시도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돕는 것이다.
우리도 5060 남성들이 덜 죽고 덜 고독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관계의 학교들을 시작하면 좋겠다. 생명의 숭고함과 관계의 지혜를 배워서 인자하고 자상한 시대의 멘토, 아버지로 가족과 사회에 힘이 되어주는, 새 삶의 자리를 찾는 5060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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