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 실종 시대, DJ가 정말 그립다
올해는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다. 1971년 4월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은 40대 기수를 표방하면서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다. 학구파이자 박학다식했고, 웅변술이 뛰어났다.
당시는 독재자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지 10년째였다. 정치 경험 없는 군인들의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중농정책은 실패했다.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했다. 기층민은 피폐해진 농어촌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었다. 군사정권은 산아제한을 강행했다.
이때의 대통령 선거 구호는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참겠다 갈아치우자!’였다. 김대중은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확실했다. 1971년 발간한 김대중의 역저 <대중경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00문 100답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53년 전의 일이다. 김대중의 혜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김대중은 6선의 국회의원 정치 경험과 풍부한 독서를 통해 국가운영에 대해 철저히 준비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가톨릭 신자답게 진실했다. 불굴의 정신과 투지에서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다.
장충단 공원에 운집한 100만 청중은 군사정권의 비정을 파헤치며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갈파한 김대중에게 열광했다. 김대중은 여세를 몰아 전국 유세에 나섰다. 당시 나의 나이는 24세였다. 강원 강릉시 주문진 유세장을 찾아온 대선 후보 김대중과 즉석에서 연을 맺었다. 이어 수천명 군중 앞에서 그를 위한 지지연설을 했다. 하지만 평생동지 김대중과 정치 노선을 함께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다.
김대중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죽을 고비를 5번이나 넘겨야 했다. 한국 중앙정보부(KCIA) 공작으로 일본 도쿄에서 납치되어 대한해협에서 고기밥이 될 뻔했다. 또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겨우 살아났다.
현대사에서 김대중처럼 생사를 넘나들며 박해받았으나 결국 뜻을 이룬 정치인은 전무후무하다. 역대 군사정권은 용공 조작으로 빨갱이라는 너울을 씌우고 전라도 출신이라고 폄훼하면서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나치의 괴벨스처럼 파시즘 강화를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김대중 핍박과 군사정권의 야만성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했다.
창씨명 오카모토 미노루, 박정희는 일찍이 일본의 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한 육사 57기로 관동군 장교 출신이었다. 또한 여순반란사건의 주모자로 남로당 당원으로 활동했다는 그의 전력은 역사가 증명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통치 수법은 정적을 빨갱이로 모는 것이었다. 군사정권 30년 동안 민주세력은 무조건 좌익으로 매도됐다. 그럼에도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은 1998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대중과 함께 군부독재에 맞서 쟁취한 민주화는 민주 대장정의 찬란한 금자탑이었다.
김대중은 재임 기간 동안 IMF 구제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이루어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한반도 평화 노력과 업적은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김대중의 정신은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하늘같이 섬김)을 전제로 한 화해, 포용, 협치의 정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불의하기 짝이 없는 패거리, 야합, 중상과 모략, 후안무치한 변절과 막가파식 야바위 정치가 판치고 있다. 김대중과 같은 지도자가 없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탄생 100주년. 그가 남긴 발자취를 교훈 삼아 대한민국의 무궁한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을 비롯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책무일 것이다.
정인수 김대중재단 지도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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