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풍경] 똑똑한 염소·소·돼지…식용동물 인지연구 외면받는 이유

한겨레 2024. 1. 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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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회가 논쟁거리처럼 보이는 법안에 쉽게 합의했다.

독일 두머스토르프에 있는 가축생물학연구소(FBN)의 돼지, 소, 염소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를 소개했는데, 특히 염소를 인상 깊게 묘사했다.

그래도 한 세대 뒤에는 염소 등 포유류 가축도 개와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져 '가축 식용금지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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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축생물학연구소(FBN)는 덩치가 커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소나 돼지 대신 염소를 대상으로 가축의 각종 인지와 정서 등을 연구한다. 특히 나이지리아 난쟁이 염소는 덩치가 작고 성격이 온순해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위키피디아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매사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회가 논쟁거리처럼 보이는 법안에 쉽게 합의했다. 지난 9일 통과된 ‘개 식용 종식 특별법’으로, 2027년부터는 식용으로 개를 사육, 도살, 유통, 판매하면 실형을 받는다. 88서울올림픽 때 서구에서 보신탕을 비난했을 때 전통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며 반발했는데, 한 세대가 지나더니 스스로 서구 기준에 맞추고 나선 셈이다.

법안 통과에 개 식용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을 빼면 별다른 반발이 없는 건, 대다수 사람이 개를 반려동물로 보기 때문 아닐까. 실제 2000년대 이후 발길이 뜸해지며 최근에는 보신탕집을 찾기도 어렵다. 필자가 사는 도시에도 50년 전통의 유명한 보신탕집이 있는데, 수년 전 식당 이름에서 ‘보신탕’을 뺐다.

이처럼 보신탕을 멀리하는 분위기 속에서 염소탕이 보신탕의 대안으로 뜨는 것 같다. 필자가 종종 순두부를 먹으러 가는 식당은 염소탕으로 유명한데, 요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대다수가 염소탕을 먹는다. 최근 우연히 염소고기 상자들을 냉동차에서 식당으로 옮기는 모습을 봤는데, 도살과 공급 과정이 꽤 위생적인 것 같았다. 염소고기를 먹는다고 뭐라 할 서구인은 없으니 꿩 대신 닭인 셈일까.

그런데 개는 먹으면 안 되고 염소는 되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우선 개는 사람과 함께한 역사가 3만~4만년이지만 염소는 1만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개는 사냥 동반자였다가 반려동물이 됐지만, 염소는 처음부터 지금처럼 젖과 고기, 털을 얻기 위해 길러왔다. 심리와 행동의 관점에서도 개는 사람과 교감하고 가르치면 배변도 가릴 정도로 똑똑하지만, 염소 등 가축은 그렇지 않다.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에 마지막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탐방 기사가 실렸다. 독일 두머스토르프에 있는 가축생물학연구소(FBN)의 돼지, 소, 염소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를 소개했는데, 특히 염소를 인상 깊게 묘사했다. 낯선 방문객에 불편해하는 돼지와 달리 염소 가운데는 호기심을 넘어 간절하게 눈을 맞추려는 녀석도 있어 ‘염소 가죽을 둘러쓴 개’가 아닌가 혼란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가축의 인지와 정서를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돼지는 동료가 덫에 갇히면 빼내려고 애쓰고, 소는 어린아이보다 빨리 변기 사용법을 배운다. 소들에게 추적장치를 붙이고 관찰한 결과, 축사에 친구끼리 두면 서로 털을 골라주며 행복하게 지내지만 적을 붙여 두면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각자 친구와 적이 있다는, 개성과 호불호가 뚜렷하다는 말이다.

염소는 시소처럼 생긴 장치에서 동료들이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한쪽으로 움직이는 이타심을 보이고, 틀린 그림 찾기에서도 사람보다 뛰어난 식별력을 보인다.(보상으로 좋아하는 과자를 준다.) 개처럼 사람이 손으로 가리키는 대상을 바라보는 능력도 있다.(참고로 침팬지조차 뭔가를 가리키는 행동의 의미를 몰라 가리키는 손만 본다.)

이처럼 가축들의 놀라운 능력을 밝혀도 저명한 학술지에 실리기도 어렵고, 연구비를 받기는 더욱 어렵다. 연구자들은 그 배경에 “식용동물이 개만큼 똑똑하고 정서가 풍부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위선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 세대 뒤에는 염소 등 포유류 가축도 개와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져 ‘가축 식용금지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때의 대안은 배양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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