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의 정담] 비난·냉소 넘어 ‘도전의 공론장’ 만들 수 있을까
영국 복지국가의 등장에는 이렇듯 시민의 삶을 옥죄는 당대의 핵심 의제를 드러내고 공론화한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 정책의제 제기자이자 공론장의 매개자, 촉진자로서 저널리즘의 모습이다. 역사적 조건과 언론계 상황이 달라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형성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 주요 사회정책 도입 과정에서 언론은 그저 ‘수동적인 전달자’나 ‘소극적 정책행위자’에 머물렀다.
“5살쯤 돼 보이는 허약한 아이 하나가 자기 키만 한 광주리들 사이를 기어오듯 걸어왔다. 퍼렇게 언 맨발은 포석을 밟았고, 해진 옷 틈새로 팔꿈치와 무릎 맨살이 드러나 보였다. (…) 아이는 (노점상) 여인에게 다가가 외발로 서서 추위에 떨며 말했다. ‘우리한테 버릴 강냉이 좀 줘요’”
1849년 영국 신문 ‘모닝 크로니클’의 ‘런던의 노동과 빈민’이란 기획연재 기사 일부다. 헨리 메이휴란 언론인이 쓴 이 기사는 빈민의 참혹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 글은 당시 수많은 시민과 자선사업가의 심금을 울렸다. 개중에는 갈색의 눈이 매력적인 옥타비아 힐이란 이름의 어린 소녀도 있었다.
힐은 훗날 메이휴를 따라 런던 빈민가로 들어갔다. 그의 목적은 ‘해법’에 있었다. 빈민가 낡은 집들을 수리해 임대하는 한편, 세입자인 빈민가정을 일일이 찾아 삶의 의지를 북돋우고 공동체 의식을 키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들 놀이 공간을 만들고, 주민들이 함께 쓸 공동회관도 만들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힐의 주택관리 방식은 오늘날로 치면 주거복지 사업이었다.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스’는 힐의 성취를 두고서 “황폐한 마구간과 똥 무더기로 뒤덮인 듯 비참한 집들이 수리되고 (…) 황무지 같은 지역은 놀이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메이휴의 기사에 영감을 받은 이는 힐만이 아니었다. 사업가인 찰스 부스도 있었다. 부스는 1866년 메이휴의 방식을 응용해 런던에서 대규모 빈곤조사를 처음으로 벌였다. 그 결과, 런던시민 열에 셋이 극빈 상태에 놓여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는 빈곤이 개인의 나태함 탓이란 당시의 빈곤관을 깨부수었다.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가 빈곤퇴치를 위해 정책을 통해 개입해야 한다는, 이른바 ‘복지국가 빈곤관’을 낳았다.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이 그의 조사를 두고 “영국 복지국가의 출발”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영국 복지국가의 등장에는 이렇듯 시민의 삶을 옥죄는 당대의 핵심 의제를 드러내고 공론화한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 정책의제 제기자이자 공론장의 매개자, 촉진자로서 저널리즘의 모습이다. 역사적 조건과 언론계 상황이 달라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형성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폐쇄회로 속에서 정책이 결정된 군사독재 시절이야 논할 필요가 없지만, 민주화 이후엔 얘기가 다르다.
1999년 ‘한국 복지국가 태동에 변곡점을 이뤘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등 주요 사회정책 도입 과정에서 언론은 그저 ‘수동적인 전달자’나 ‘소극적 정책행위자’에 머물렀다. 의료보험 통합과 국민연금 개혁 등 한국 복지사의 주요 ‘역사적 순간’에서도 언론의 역할은 미미했다. 자본에의 종속이 심해지면서 ‘거대자본의 대변자’ 또는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특정 진영의 프레임과 정책을 대변하는 ‘진영언론’ 양상을 띠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폴리저널리스트’는 이런 언론의 일그러진 초상이었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프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해방 뒤 오욕과 굴절의 한국언론사 속에서도 독재에 항거하고 자본의 힘에 굴하지 않은 어기찬 언론인들의 빛나는 분투가 있었다. 때로는 매서운 감시로 권력을 강타한 헌걸찬 순간도 있었다. 근년에는 산업재해, 장기요양과 돌봄 등 몇몇 정책의제와 관련해 훌륭한 탐사보도나 현장성 높은 기획물들이 간간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핵심 의제를 선도적으로 끌어내 공론화함으로써 시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정책을 도입하도록 하거나, 복지국가 발전에 큰 계기가 된 저널리즘 사례를 자신 있게 손꼽기란 쉽지 않다.
바야흐로 분초 단위로 미디어 소비가 넘나들고, 언론의 경쟁상대가 더는 언론이 아닌 시대다. 유사언론과 언론의 경계가 모호하고 분별조차 쉽지 않은 혼돈의 디지털 미디어 시대다. ‘디지털뉴스리포트 2023 한국’(한국언론진흥재단)을 보면, 뉴스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28%에 불과하다. 조사대상 46개국 중 수년째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낮은 뉴스 신뢰도는 뉴스 회피로 이어져, 그 비율이 50%에 이른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로 하루에 총 11시간 이상 쉼 없이 무언가를 보지만 뉴스를 보지 않거나 보더라도 그 시간은 짧다. 종이신문이나 언론사 누리집은 말할 것도 없고, 포털을 통한 뉴스 구독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요즘 대세는 유튜브다. 한국인인 응답자 2명 중 1명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짜뉴스가 수시로 솟구치고 확증편향으로 치닫게 하는 알고리즘을 지닌 유튜브가 과연 건강한 공론장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시민이 다 함께 모여 현안을 논의할 바람직한 공론장은 과연 어디인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수없이 많이 쪼개진 디지털 커뮤니티 환경에서 의제제기를 논의할 시민 공론장이 과연 가능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론장’에 대한 의문 속에, 그 실현가능성 유무를 떠나 언론이 새겨야 할 한가지 어김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갈등을 해소하고 의견을 모으는 공론장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구성해야 할 언론의 책무는 여전하고, 그게 저널리즘 본질이란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시민의 판단과 정책결정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책에 관한 정보와 논리를 제공하는 전문적인 일은 여전히 언론이 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저널리즘”이라고 말했다. 전통매체냐, 포털이냐, 유튜브냐, 페이스북이냐 등 채널에 대한 고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널리즘을 제대로 수행하느냐 여부란 얘기다.
따라서 진정 언론인이라면 “오늘은 물론 미래의 바람직한 저널리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쉼 없는 질문과 더불어 각기 서로 다른 위치(매체)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은 오늘날 시민의 고통에 응답하고 국가와 공동체의 핵심의제를 지속해서 제기하는 의제제기자로서 저널리즘을 일상적으로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공론장의 매개자와 촉진자로서 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역할에는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또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언론이 이런 역할을 올곧이 하려면 어떤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언론은 어떤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가?’
당장 답이 쉽지 않은 물음들이다. 만병통치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 등 대안저널리즘에 대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은 바로 진실을 찾는 의제제기자이자 공론장의 매개자로서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히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1995년 5월 한국을 방문한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세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째 가치에 대한 규범적 기대가 있어야 하고, 둘째 이를 수행할 자유주의적 정치문화가 보장되어야 하며, 다음으로 민주적 원칙에 부응하는 갈등해소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이런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실현하기 위해 싸워야 할 장 또한 공론장, ‘도전의 공론장’이라고 했다.
비록 미미하지만, 시대의 의제를 제시하고 그 해법을 찾고 ‘도전의 공론장’을 조성하려는 크고 작은 시도가 언론계 안팎에서 구상되거나 실험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없지만 세상이 저절로 바뀌지 않듯 언론 또한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그 출발은 진실 추구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려는 언론인다운 “자긍심의 회복”과 깊은 성찰이 아닐까. 더불어 깊이 있는 의제 중심의 보도를 위한 뉴스룸 재편과 언론인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저널리즘의 혁신 또한 뒤따라야할 것이다. 미디어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개혁, 이른바 언론개혁도 수반돼야 한다. 이는 언론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언론과 시민사회, 학계, 시민 등이 대거 결합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언론개혁을 위한 구체적 공동의 노력이 그래서 절실하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와 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와 복지정치 혁신 없이는 좋은 복지국가도, 질 높은 민주주의도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책 행위자를 탐구하는 이 연재칼럼 집필에 매진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복지의 문법’(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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