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성난 사람들’
사회적 기대와 역할에 충실하려 스스로를 지나치게 다그치고 억압하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표출되지 못한 채 내면에 쌓인다.웃는 얼굴이란 가면 뒤에 분노와 절망만큼이나 깊은 것은 가까운 이들조차 이런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고립감이다. 안으로 무너지면 자살이 되고, 밖으로 터지면 범죄가 벌어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에서 아시아계 이민자인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는 그런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실패한 도급업자 대니는 효심 깊은 맏아들이지만 철부지 동생을 돌보는 것도 벅차다. 무너진 자존감은 허세로 간신히 포장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현모양처인 에이미는 사실 무능한 예술가 남편 대신 가정을 지키려다 한계 상황에 내몰려 있다. 생면부지인 두 사람은 보복운전 사건으로 만나 거짓말과 오해로 서로를 파괴한다. 날것의 감정을 표출하는 복수로 얽히면서 두 사람은 고립감에서 해방된다.
<성난 사람들>이 15일(현지시간) 미 방송계 최고 권위 에미상의 미니시리즈 부문 11개 후보에 올라 작품상·감독상·남녀 주연상 등 8개 트로피를 받았다. 골든글로브 작품상 등 3관왕에 오른 데 이은 쾌거다. 이 작품은 각본·연출을 맡은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해 비주류로 겪은 경험에 바탕을 뒀다. 이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작품 속 자살충동은 제가 수년간 겪었던 것”이라며 “사람들을 갈라놓는 이 세상에서 이해받지도,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드라마 시청자들이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하다. 굉장한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은 비주류 이민자들의 정서가 보편성을 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속감이 약화되고 양극화는 심화되는 ‘체제의 실패’ 속에서 개인들의 분노와 고립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니와 에이미는 ‘복수’라는 파괴적이고도 절박한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해나간다. 스티븐 연은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편견과 수치심은 아주 외로운 것이지만, 동정과 은혜는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만든다”고 했다. 우리는 이 블랙코미디와 다른 어떤 방식의 연결을 상상할 수 있을까.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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