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새의 검은 눈동자 같았다 [1인칭 책읽기]
김지연 작가의 「반려빚」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사이
그 아주 짧은 소통의 순간
1월 1일 새해 다마스를 타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여자친구를 마중 나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온화했고, 새해 연휴의 마지막 날을 맞은 도로는 비어있었다. 이번 새해는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다마스의 작은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풍경을 보며 이렇게 소소하게 새해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에는 보통 해돋이를 보러 동해로 갔다. 아니면 일이 바빠 읽지 못하고 미뤄뒀던 책을 읽고는 했다. 2024년에는 어딘가 가지 않고 현대문학상 수상집을 읽었다. 국내에 다양한 문학상이 있지만 현대문학상 수상집이 갖는 의미는 이 책이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매해 모든 작품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종의 '문학 지형도'를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여러 소설 중 김지연의 「반려빚」에 마음이 갔다. 우리 세대의 경제 문제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반려동물처럼 '빚'이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재기발랄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방화대교를 지나 인천으로 향하는 길. 한참을 달리는데 다마스가 갑자기 휘청이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지 싶어 계기판을 봤다. 시속 60㎞. 그렇게 빠를 것도 아닌 속도였다. 차가 흔들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개화터널에 진입했다. 문제는 더 커졌다. 다마스는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직진을 할 수도 없었다.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터널을 빠져나와 터널 밖 비상 차로에 차를 댔다.
다마스의 뒷바퀴가 찢어져 있었다. 펑크라는 말은 적절치 않았다. 찢겨나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더 속도를 높여 달리다 타이어가 찢어졌다면… 이 생각까지 미치자 등골이 서늘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했더라. 잠시 생각하다 가드레일 뒤로 넘어 가 서있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게 생각났다.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휴일인 데다 고속도로라서 견인차가 오는 것도 30분이 넘게 걸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가드레일 뒤로 넘어 들어가 풀숲에 서서 다마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마스 옆으로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차가 휘청거렸다. 여자친구에게 사고 사실을 알렸고 보험회사에 연락도 했고 이제 견인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꾸 차에 두고 내린 카메라가 떠올랐다. 다마스는 자동차니까 사고가 나도 보험 처리하면 그만인데…. 당장이라도 다마스로 달려가 카메라를 꺼내오고 싶었지만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라는 한문철씨의 얼굴이 떠올라 차로 뛰어들지 못했다.
그래도 카메라 '값'이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카메라 렌즈. 카메라 본체인 바디값만 하더라도 다마스값에 육박할 텐데. 저렇게 타이어가 터져버린 다마스가 다른 차에 치여버리면 같이 보험 처리를 해주려나.
고속도로에 서서 터진 타이어를 보며 머리로 빚을 굴린 덴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19 이후에 빚이 생겼다. 당시 문예창작과 입시 학원을 운영했는데 집합금지 조치로 학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월세는 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았고, 그 빚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속도로 비상 차로에 있는 다마스가 혹시라도 다른 차와 또 부딪힐 것을 생각하자 김지연의 소설 「반려빚」이 다시 떠올랐다.
김지연의 「반려빚」은 청년 세대의 경제 문제를 이야기한다. 꿈속에서 '반려빚'은 사람에게 목줄을 채우고 산책을 간다. 주인공 화자는 자신이 '반려빚'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전세사기라는 큰 사건을 다루면서도 개인의 아픔으로 이야기를 잡아나간다. 빚을 고민하는 건 내 사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웃으면서 읽다가 코끝이 찡했다.
여기서 2차 사고가 나서 카메라마저 잃으면 그때는 코로나19 때 받은 대출 원리금이 내 '반려동물'이 되는 건 아닐까 상상했다. 그럼 집에는 웰시코기 한 마리, 라쿤 세 마리, 그리고 '반려빚'까지 있으니 동물농장 같을 것이다. 여자친구와 곧 함께 살 테니 집은 복작복작해질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참새보다는 크고 닭보다는 작은, 작은 비둘기보다는 조금 큰 새 한 마리가 다마스 지붕 위에 앉았다.
다마스에 앉은 새는 재잘재잘 울음소리를 냈다. 잠깐 앉아 있다 떠날 줄 알았던 녀석이 다마스 위에서 다시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드레일 너머에서 소리를 질렀다. "거기 앉아 있으면 안돼!" 새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 다시 울음소리만 내고 제자리를 지켰다. 내가 더 큰 소리로 "거기 있으면 위험해!"라고 소리를 지르자 순간 대형 버스가 또다시 지나갔다.
새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가드레일을 다시 넘어 새를 쫓아내기 위해 손을 흔들며 다마스로 뛰었다. 차에 바싹 붙어 새를 쫓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새는 사람이 가까이 와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바라볼 뿐 떠나지 않았다. 잠시 멈춰서 새가 나를 봤다. 구슬 같은 검은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새와 내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시끄러운 차 소리는 들리지 않고 새의 검은 눈만 그곳에 있었다. 새와 내가 잠시 무언가 통한 것 같았다. 순간 새의 몸에서 무엇인가 나왔다. 용변이었다. 다마스에 하얀 용변을 싼 새는 훌쩍 날아갔다. 다마스에 남은 용변자국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가드레일 너머로 넘어가세요. 고속도로 순찰대원이었다.
새해가 열렸다. 새와 내가 눈빛을 나눈 시간을 생각했다. 김지연의 「반려빚」에선 돈을 빌려가 잠수를 타 놓고 어느날 갑자기 당당히 연락해 돈을 갚을 테니 잠시 함께 살자는 서일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말도 안 되는 당당함에 왜 나한테 이러냐는 화자에게 서일은 말한다. "너는 나를 이해해 주잖아."
문학은 서로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래서 소통되지 않는 그 순간을 목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빚은 소통되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낸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연의 「반려빚」은 내게 새의 검은 눈동자 같다. 약속시간에서 2시간이 지났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여자친구가 차에 타며 말했다. 오빠. 차에 이상한 게 묻어 있어. 응, 나도 알아. 짧게 대답했다. 늦은 저녁 우리는 칼국수를 먹고 서울로 돌아왔다. 평범한 하루였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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