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기술도 산업도 집적이 핵심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기업은 어디일까? 삼성전자, 인텔, TSMC가 수위를 다투고, SK하이닉스도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그런데 관점에 따라 위 질문의 답은 애플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이 반도체를 직접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플의 반도체 매출은 업계 10위 안에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오직 자사 전용 반도체 매출만 반영된 수치다. 애플을 비롯해 MS,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 등 나스닥 시가총액 7위 내 기업은 모두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빅테크를 반도체 기업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는 반도체의 기술적 중요성 때문이다. 데이터 용량이 작고, 복잡한 연산이 불필요한 분야에선 반도체의 역할이 크지 않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로봇, 모빌리티, 양자컴퓨터 등 데이터가 핵심인 첨단산업에선 반도체 성능이 제품 및 서비스 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가령 초거대 AI 구현을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초고용량 메모리반도체와 이를 빠르게 연산·처리하는 초고성능 시스템반도체의 활용이 필수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우리 기업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소자 양사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60%를 상회한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선 미국과 대만이 앞서 있다. 미국은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시장에서, 대만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Foundry) 시장에서 60% 이상을 점유 중이다.
그런데 최근 기술 발전에 따라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데이터 저장과 연산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하나의 반도체로 집적(集積)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성이 다른 두 반도체의 결합을 위해서는 R&D부터 설계, 시험,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전 주기를 포괄하는 기술 융합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최근 메모리, 소부장, 팹리스, 파운드리 등 반도체 전 분야 밸류체인을 연계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나선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정책이다. 클러스터는 19세기 말 신고전학파의 창시자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기업·기관 등을 지리적으로 집적함으로써 거래비용을 낮추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시스템이다. 집적회로(IC)가 핵심인 반도체의 특성과 닮았다.
미국은 실리콘밸리, 대만은 신주(新竹)과학산업단지라는 견고한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든든한 토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에 강점을 가진 메모리반도체와 소부장, 시스템반도체를 연계한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면 그보다 더 크고 역동적인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유리해지고,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물론 소자 대기업의 투자가 200개 이상 소부장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를 통해 패키징, 소재·부품 등 여타 특화 클러스터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의 성공적 구축을 위해서는 민·관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는 클러스터 성공 요인으로 민간의 주도적 역할을 제시했다. 그리고 제도·인프라 정비 등 정부의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관점에서 36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중심으로 입지, R&D, 인력, 세제 등 정부의 촘촘한 지원이 뒷받침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은 밑그림이 잘 짜였다. 더 나아가 유관 협회, 얼라이언스 등을 활용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과도 접점을 넓혀 민간의 수요를 최대한 많이 발굴하고 반영해야 한다.
클러스터 내 혁신 주체도 다양화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대학 졸업생들의 창업 기업이 주축을 이뤘고, 대만 신주과학산업단지는 공공연구기관 ITRI에서 분사한 TSMC가 주도하고 있다. 이같이 기업뿐 아니라 인재를 공급하고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대학, 연구기관의 유치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 물량 10% 감소는 국내총생산(GDP) 0.78% 감소로 이어진다고 한다. 반도체가 GDP의 약 7%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정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육성 방안은 비단 산업계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반도체 코리아'에선 반도체 투자가 민생 회복의 첫걸음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애걔, 2만원어치 순대가 고작"…`홍천 꽁꽁축제`도 바가지 논란
- `아찔한 자세`로 곡예운전 베트남 유명 女모델, 철창 가나
- "피해자 극심한 고통"…`성폭행` B.A.P 힘찬 징역 7년 구형
- 경찰, `한동훈 딸 스펙 의혹` 혐의없음 결론…1년 8개월만에
- "할아버지 왜 때렸냐?"…경비원 폭행 10대男 잡아 무릎 꿇렸다
- [트럼프 2기 시동]트럼프 파격 인사… 뉴스앵커 국방장관, 머스크 정부효율위 수장
- 거세지는 ‘얼죽신’ 돌풍… 서울 신축 품귀현상 심화
- 흘러내리는 은행 예·적금 금리… `리딩뱅크`도 가세
- 미국서 자리 굳힌 SK바이오팜, `뇌전증약` 아시아 공략 채비 마쳤다
- 한화, 군함 앞세워 세계 최대 `美 방산시장`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