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드라마가 역사교육 하는 현실
얼마 전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와 김숙흥 장군의 전사 장면이 화제가 됐다. 극장가에선 '노량'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장면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우리 민족사 대영웅들이 동시에 조명 받고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그동안 크게 주목 받은 것에 비해, 양규와 김숙흥 장군은 비교적 소외됐었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아는 이름이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이건 교육의 문제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영웅이었다면 양규 등은 고려초 거란의 2차 침입 때 나라를 지킨 영웅이다.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많은 국민이 당연히 알았을 역사다. 교육이 하지 못한 일을 이번에 드라마가 대신 해낸 느낌이다.
양규는 3000여 명의 병력으로 흥화진에서 거란의 40만 병력을 일주일간 막아냈다. 그로 인해 거란군의 예봉이 꺾였다. 후방기지도 확보하지 못한 때 불안한 진군을 하게 됐다. 거란군은 후방의 불안 때문의 군을 반으로 나누기도 했다. 양규의 분전으로 고려 본토로 진군한 거란군의 전투력이 반감된 것이다. 그것이 이후 거란군이 통주성이나 서경 등을 함락시키지 못한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거란군은 곽주성을 함락해 후방 보급기지로 삼았다. 양규는 700명 결사대와 함께 흥화진을 둘러싼 거란군을 뚫고 나와 통주성에서 패잔병 등 1000명의 병사들을 규합했다. 총 1700명 규모의 부대를 편성해 곽주성을 탈환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활약이다. 그냥 드라마에 나왔으면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설정이라고 비웃을 텐데 실제 역사라니 놀라울 뿐이다.
그나마 하나 있던 후방 보급기지를 빼앗긴 거란군은 불안에 빠져 결국 소득 없이 철군을 결정하고 말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보급을 막아 전세를 역전시킨 것과 유사한 구도다. 영화 '노량'에선 퇴각하는 적들을 목숨 바쳐 섬멸하려는 이순신 장군의 투혼이 그려진다. 양규도 퇴각하는 거란군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로 정면대결을 하진 못했지만 김숙흥 장군과 더불어 신출귀몰한 전술로 끝까지 적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3만 명 이상의 고려 포로들을 구해내기도 했다.
이건 고려의 국력을 보존해 향후 있을 또 다른 침입에 맞설 힘을 기르도록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싸움에서 전사한 것처럼 양규와 김숙흥도 마지막 싸움에서 전사했다. 황제가 있는 거란 본대와 종일 싸우다가 화살이 다 떨어져 둘 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화살을 맞고 숨졌다고 한다.
당시 거란 정예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극히 적은 병력으로 그런 거란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건 정말 엄청난 전공이다.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 나라를 지켰다. 이런 정도의 눈부신 역사가 있는데도 교육이 제대로 전하지 않은 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 정도 역사라면 민간의 수익 논리와 상관없이 나라의 지원으로 영상 재현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고려거란전쟁'은 처음엔 제대로 된 전투장면이 나올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했지만, 흥화진 수성전 때부터 양규의 전투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 거란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야전 전투들도 분대 규모의 보병 백병전 정도로 간략하게만 그려졌다. 실제 양규군은 1000명 이상의 기병이었을 것이다.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전투 묘사를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지막 전투에서의 전사 장면만은 드라마가 공들여 묘사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거란군과 처절하게 싸우는 양규, 김숙흥의 모습이 안방극장에 큰 울림을 안겼다. 이로써 거란 2차 침입 항전의 영웅들이 국민의 뇌리에 새겨졌고, 우리 민족사는 더 위대해지고 풍부해졌다. 모처럼의 기회인데 많은 제작비로 항전 모습이 더 정밀하게 묘사됐다면 보다 큰 파급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이번에 드라마를 통한 역사의식 제고의 효과를 확인했으니 앞으로 또 다른 역사 발굴에도 힘이 실리면 좋겠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당시 황진 장군의 분투 같은 역사도 보다 크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그런 드라마들이 적극적으로 제작되기 위해선 지금 방영되고 있는 '고려거란전쟁'에 국민의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이게 성공해야 후속작도 기약할 수 있다. 정부도 민족사의 영상 복원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역사교육도 정상화 돼야 한다. 민족사의 영웅들을 너무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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