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금융의 본질 묻는 `비트코인 ETF`, 승인 신중해야

강현철 2024. 1. 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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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신문총괄 에디터

5년전 세상을 떠난 존 보글은 워런 버핏과 어깨를 겨룬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로 꼽힌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이 '구텐베르크 활자와 맞먹는 발명품'이라고 극찬한 인덱스펀드를 세계 처음 만들었고, 1974년 자산운용사 뱅가드를 설립해 1996년까지 20년 넘게 직접 경영하며 운용자산 규모 세계 2위로 키웠다. 싼 수수료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인덱스펀드는 '투자 민주화'를 이끌었으며, 그에게 '월가의 성인(聖人)'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를 승인한 데 대해 가상자산 투자자와 금융사들이 환호하는 가운데서도 뱅가드는 이 ETF를 뱅가드 플랫폼에서 거래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비트코인 ETF나 가상화폐 관련 자산을 출시할 계획도 없다고 공지했다. 뱅가드의 이런 결정은 비트코인 현물 ETF가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한다'는 투자철학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관련 상품에 투자할 경우 고객 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리 겐슬러 위원장이 법원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금융과 실물이 완전 분리되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금융의 역사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또다른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혹은 미래의 현금흐름에 대한 법률적 청구권을 나타내는 금융상품은 금융공학의 발전과 함께 선물, 옵션,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파생상품으로 진화해왔다. CDO(부채담보부증권)나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상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이 되기도 했으며, 금·원유 등에 투자하는 거대 ETF는 세계 원자재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금융상품이 다양하고 복잡해졌다고 해도 실물경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은 변치 않았다. 기업이나 부동산, 원자재 등의 가격(가치) 변동이 수익률 변동의 주 요인이었으며, 이렇게 투자된 자금은 직간접적으로 실물에 영향을 미쳤다. 주식이나 채권은 기업 자금조달 수단 역할을 했으며, 원자재 ETF는 원자재의 비축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은 부동산의 개발과 사용에 일조했다. 그런데 비트코인 현물 ETF는 이런 원칙을 처음으로 깨트린 셈이 됐다. 허공에 뜬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엔 실물과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으며, 비트코인 현물 ETF는 경제 발전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이게 바로 보글이나 버핏이 비트코인에 부정적인 이유다. 보글은 가상화폐 광풍에도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건 미친 짓"이라며 "채권은 이자, 주식은 기업 실적과 배당이 있지만 비트코인을 지탱하는 것은 자신이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기대뿐"이라고 했다. 버핏도 "비트코인은 도박 토큰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이 룰렛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은 실물경제 지원은 커녕 성매매와 탈세, 자금세탁, 테러 자금 조달 등에 악용되고 있다. 가치 측정 방법이 없어 가격변동성과 투기성 또한 높다. 국가에 의해 가치가 보장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도 다르다. 이런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현물 ETF를 승인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합법적인 '돈 놓고 돈 먹기' 도박판 개설을 허용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트코인 현물 ETF에 흘러들어갈 수십, 수백조원은 좀 더 생산적인 데 투자돼야 할 돈이다. 현물 ETF의 승인으로 재미를 보는 곳은 투자로 이익을 낸 소수 투자자와 비싼 수수료를 떼는 금융사일 뿐이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국내 중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일단 금지시켰다. 그러자 총선을 앞두고 한 표가 급한 대통령실은 투자자 반발을 우려, "결론을 정해놓지 말고 폭넓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려면 비트코인이 어떤 자산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가상자산 투자 광풍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듣지 않을 수 있다. 신문총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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