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자본시장 망치는 '稅폭탄'… 토종개미 해외증시로 내몰아
국내증시 거래세율 0.18%
주요국 가운데 3번째로 높아
상속세율도 세계 최고 수준
稅부담에 주요국 대비 주가부진
투자금 해외로 대거 이탈하고
절세용 법인 설립까지 늘면
금투세 세수목표 달성 어려워
◆ 후진적 자본시장 세제 ◆
새해 들어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6.4% 오르는 동안 코스피는 5.9% 하락했다. 북한과 관련한 지정학 리스크, 환율 영향이 있지만 투자자를 옥죄는 과세 구조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 우상향에 대한 기대가 없다 보니 금리나 환율이 조금만 흔들려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이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투자소득세 등 양도세 성격의 세금이 추가로 도입되면 국내 주식 투자가 해외 주식 투자보다 불리해져 투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은 주식 거래에 대해 주요국 중에서 세 번째로 높은 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다. 거래세율이 0.18%로 주요국 증시 가운데 프랑스, 싱가포르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인 금투세까지 더해지면 국내 주식 투자는 세금의 덫에 갇히게 된다.
세금이 높더라도 투자 매력도가 크면 투자금이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주주 환원율을 놓고 볼 때 국내 주식은 최하점 수준이다.
순이익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재원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는 주주 환원율은 29%에 불과하다. 미국은 92%, 선진국 평균이 68%다. 개발도상국 평균도 37%다. 상장사들이 이익을 많이 내도 소액주주에게 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에선 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법적 장치가 거의 마련돼 있지 않으니 합병 비율 왜곡 산정, 터널링(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부의 이전 행위) 같은 선진 자본시장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며 "투전판으로 변질된 주식시장이 금투세란 암초를 만나면 쉽게 전복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금투세로 인해 큰손들이 국내 주식을 줄이고 해외 주식 비중을 높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증시에는 주주 환원뿐만 아니라 이익 성장세가 탄탄한 대형 기술주들이 포진해 있어 역사적으로 우상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본 증시도 금투세 도입 시 자본 도피처로 꼽힌다. 최근 주가가 급등하며 버블경제 시대 주가 수준에 근접한 일본 증시는 주주 환원율 측면에서도 한국과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4월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 기준을 재편하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기업에 주주 환원 정책을 촉구한 것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리면서 외국인 매수 증가와 증시 랠리를 이끌었다. 지금까지는 환전, 시차, 언어장벽 때문에 주로 국내에 투자하는 모국 투자 편향(home bias)이 있었지만, 금투세 시행으로 다양한 세금 불이익을 안고 굳이 한국 증시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업 투자자들의 분위기다. 전업 투자자 A씨는 "올해 총선에서 야당이 이기면 내년부터 금투세를 거두니 올해부터 시장이 망가질 것이라 보고 이미 국내 주식을 정리하고 해외 주식으로 갈아탄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식 이민' 효과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금투세로 인한 세수 확보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금투세가 2025년 도입될 경우 확보할 수 있는 세금이 2025년엔 8000억원, 2026년은 1조6000억원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을 외면하고 가족 간 양도소득 분산, 법인 설립을 비롯한 조세 회피 전략까지 횡행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예상 세수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미 건강보험료, 각종 경비 처리, 부동산 절세 같은 여러 이유로 1인 법인 설립이 활발하다. 법인 설립 때 주식 매매 차익을 금투세가 아닌 사업소득에 대한 법인세로 과세하면서 2억원까지는 9%의 낮은 세율로 과세하기 때문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외국인은 안 내도 되는 금투세는 조세 형평에 명백하게 위배된다"며 "세수 부족이 우려된다면 차라리 외국인과 기관이 공정하게 세금을 부담하는 거래세를 소폭 인상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회전율 3위(1위 터키, 2위 중국) 수준으로 단타 성향이 높은 한국 증시에서는 오히려 거래세가 세수 확보에 낫다는 뜻이다.
여기에 연간 5000만원의 공제 한도 때문에 큰손들의 불필요한 매도가 나올 수 있다. 이는 불필요한 연말 매도를 막기 위해 지난해 말 개정한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기준 상향) 효과를 상쇄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같이 주식 장기 보유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에서 금투세 시행 후엔 5000만원 공제로 절약할 수 있는 세금이 1100만원에 달한다.
다시 말해 장기 투자자라고 하더라도 일단 연말 매도를 통해 연간 5000만원의 양도 차익을 실현하는 세테크에 나설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은 한국거래소가 해외 거래소와 경쟁하는 시대"라며 "국내 시장의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보면, 과도한 과세는 과거 대만의 사례처럼 투자자의 급격한 이탈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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