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350조원 조기 집행은 정말 총선용일까 [마켓톡톡]
정부가 기대하는 낙관론의 조건
하반기 물가 2%와 금리 인하
美 물가 다시 오르는 추세
유럽도 조기 금리인하 회의적
예산이 수요 키워 물가 자극할 수도
정부의 올해 상반기 예산 조기 집행을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존재한다. 예산 조기 집행은 하반기 물가 하락과 금리 인하라는 두가지 전제를 충족할 때만 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아서다. 동유럽과 중동에서 두개의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점, 팬데믹 기간에 풀린 예산이 물가를 자극했던 경험도 고려해야 한다. 조기 예산 집행의 두 견해를 살펴봤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에 예산을 조기 집행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상반기 중에 역대 최대인 (올해 예산의) 65% 이상의 재정을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재정 규모 560조9000억원 중에서 중앙재정·지방재정·지방교육재정의 인건비·기본경비 등 의무 지출을 제외한 350조4000억원을 상반기에 집행한다는 거다.
상반기 조기 투입하는 예산을 구체적으로 보면 사회간접자본(SOC) 12조4000억원(올해 24조2000억원), 복지사업 45조5000억원(올해 70조원), 노인 일자리 9조9830억원(올해 14조9000억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올해 투자할 63조4000억원의 55%인 34조9000억원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한다.
올해 민간자본이 투입되는 고속도로, 간선도로 지하화 사업 등도 앞당겨 상반기에 2조7000억원(올해 5조7000억원)을 집행한다. 최 부총리는 또 설 민생대책으로 농·축·수산물 할인지원 840억원, 일자리사업 70만명 조기채용, 취약계층 전기요금 1년 유예 2900억원, 보훈급여금 조기지급 4052억원 등을 발표했다.
예산 조기 집행에도 낙관론과 비관론은 존재한다. 정부는 우리 경제 상황이 하반기에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할 것이라면서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4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국내 실질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1.4%보다 높은 2.2%가 되고, 상품수출 규모는 지난해 -7.4%에서 올해 8.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투입해 소비 여력 감소를 막아내면, 하반기 수출을 기반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500개 회사를 대상으로 집계한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는 2023년 1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으로 상승했지만, 올해 1분기는 79로 전분기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수출은 3개월 연속 증가세다. 관세청의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수출은 576억14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0% 증가했다. 반도체와 승용차 수출이 각각 19.1%, 19.2% 늘어났다.
정부의 이런 낙관론은 두가지 전제를 충족해야 성립한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대로 내려오고, 하반기가 시작하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는 조건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가지 전제의 뒤편에서 '비관론'이 싹트고 있다.
일단 우리 기준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에선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오히려 줄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해 시장 전망치를 0.2%포인트 웃돌았기 때문이다. CME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1월 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1개월 전 10.3%에서 16일 현재 4.7%로 감소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도 물가 하락과 금리 인하 문제에서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개의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연내 금리 인상에 회의적인 인물들도 많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베르트 홀츠만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 등이다. 요하임 나겔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올해 여름이 금리 인하 여부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1일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이 이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막대한 재정이 풀리면서 총수요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물가에 부담을 준 것도 예산 조기 집행의 불안 요소다. 재정지출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하지 않는 한 통화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재정 보조를 받은 경제주체의 소득을 올려 수요를 자극하면 물가에도 부담을 준다. 정부의 조기 예산 집행을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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