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디지털 요소 접목···미술시장 활기 불어넣을 것"

서지혜 기자 2024. 1. 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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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 몰입형 전시관 '라이트룸 서울' 운영-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
까다로워진 미술시장 소비자 취향 맞춰
벽·천장 등 전체 공간 디지털로 작품 구현
난해한 현대미술 문턱 낮춰 대중화 주도
거장 호크니 기획부터 참여해 몰입감 높여
향후 갤러리현대 소속 작가들 전시도 가능
53년 미술 IP 해외진출 플랫폼으로 활용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서울경제]

“미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아직은 영화나 대중음악처럼 1000만 명이 보거나 몇 억 원의 투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은 아닙니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 현대미술을 계속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방법으로 새로운 매체인 몰입형 전시를 선택했습니다.”

최근 서울 갤러리현대 4층에서 만난 도형태 대표의 눈빛은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지식재산권(IP)’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미술 시장의 변화와 업계 선배로서 갤러리현대의 역할을 강조했다. 도 대표는 53년의 역사를 가진 갤러리현대의 창업자 박명자(80) 회장의 차남이자 2세 경영인이다.

최근 4~5년간 한국 미술 시장은 부침을 거듭했다. ‘프리즈(Frieze)’라는 대형 아트페어가 국내에 들어온 2022년 시장은 초유의 호황기를 맞는 듯했지만 1~2년 사이에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시장의 거품이 꺼져 버렸다. 거품이 사라지면서 그 뒤에 ‘진짜 컬렉터(수집가)’들이 남겨졌다. 이들은 과거와 다른 수집 패턴을 보이고 있다. 미술품 소비자의 소비 방식이 변화하자 국내 주요 갤러리, 옥션 등 미술 기업은 달라진 미술품 소비자들을 분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 대표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도 대표는 “성장기를 지나 새롭게 진입한 소비자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 온다”며 최근 변화한 시장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는 “MZ 소비자들은 본인의 취향에 대해 관심이 많고 취향을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작품을 컬렉션하고 싶어한다”며 “각자가 선호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갤러리가 작품을 제안하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미술품을 전시할 주택의 내부 모습, 가구의 종류, 인테리어 등을 물어보며 어울리는 작품을 제안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아트페어·전시회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에 대해 충분히 연구한 후 까다롭게 구매 의향을 밝히기 때문에 갤러리도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시장을 제대로 분석한 사업가에게는 이 같은 변화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도 대표는 “시장의 소비자 성향이 달라졌지만 소비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시장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 컬렉팅(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사람들은 쉽게 컬렉팅을 멈추지 않는다”며 “새로운 성향의 소비자가 시장에 진입한 것은 그만큼 고객군이 넓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젊은 고객으로 고객군이 확대됐다면 장기적으로 업계에는 청신호다. 하지만 고객군이 넓어졌다고 해 시장의 전망을 긍정하며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달라진 시장, 까다로워진 고객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도 대표는 지난해 몰입형 전시 공간 ‘라이트룸서울’을 설립해 IP 사업에서 새로워진 시장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라이트룸서울’은 메타버스 전문가인 구준회 대표와 도 대표가 함께 창업한 ‘에트나컴퍼니’가 운영하는 몰입형 전시 공간이다.

몰입형 전시는 특정 작가의 작품을 벽뿐 아니라 천장·바닥까지 전시장 전체에 디지털로 구현해 관객에게 작품 속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새로운 전시 형태다. 음향과 빛 등을 이용해 작품을 하나의 체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몰입형 전시는 제주도에 위치한 ‘빛의 벙커’ ‘아르떼뮤지엄’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전시관은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역사적 작가의 작품을 재구성해 관광지의 주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지만 미술계에서는 ‘예술 작품을 지나치게 오락 거리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정도로 예술 작품을 활용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세기간 순수 미술 작품을 거래한 화랑의 대표가 몰입형 전시 사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도 대표는 의외로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라이트룸서울’은 ‘순수 미술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전시의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트룸서울에서 현재 전시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드 클로저’는 지난해 영국 런던의 라이트룸에서 진행된 전시다. 에트나컴퍼니는 라이트룸런던과 독점 콘텐츠 IP 계약을 체결하고 서울 강동구에 12m에 달하는 런던의 전시장을 그대로 구현한 전시장을 세웠다. 약 55분간 이어지는 전시는 호크니의 60년간의 작품 세계를 회화·사진·영상 등으로 다채롭게 선보인다. 도 대표는 라이트룸서울에 대해 “이제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미술 시장의 접근성을 어떻게 더 낮출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국내의 여러 몰입형 전시 공간과 달리 라이트룸서울은 현존하는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몰입형 공간에서 체험하도록 한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가 직접 기획 단계부터 3년간 제작에 참여한 작품으로 작가가 직접 제작한 ‘미디어아트’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미디어아트’는 영상으로 구현된 예술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백남준’이라는 세계 미디어아트의 거장이 있다. 그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 세계에 송출한 백남준 선생님이 바로 몰입형 전시의 근간”이라며 “이 작품 역시 미술과 대중의 접점을 기술력에서 찾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번 호크니 전시는 노장의 회화 작가가 새로운 미디어에 도전하고 제작한 새로운 형태의 규모가 보다 큰 미디어아트인 셈이다. 도 대표는 “어떻게 현재의 기술력으로 전 세계에 같은 콘텐츠를 동시에 잘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돈을 잘 벌겠다라는 개념보다 미술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새로운 사업의 목표를 말했다. ‘몰입형 전시’는 갤러리현대가 보유한 수많은 미술 IP를 대중에게 더 잘 알리기 위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갤러리현대 소속 작가들의 작품이 IP가 돼 라이트룸서울을 거쳐 라이트룸런던에 공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라이트룸’이라는 플랫폼은 국내 작가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획기적인 창구가 된다.

도 대표가 원하는 것은 라이트룸서울을 통한 미술 시장의 확장이다. 그는 “미디어아트는 다들 어렵다고 하는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방법 중 하나”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수많은 미술 작품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술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갤러리현대의 2023년 하반기 매출은 2022년만큼 좋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계속 해외 아트페어에 우리 작품을 수출했다”며 “한 달에도 수 건씩 작품을 해외에 판매함으로써 콘텐츠 시장 확대에 기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트룸의 소프트웨어(콘텐츠) 내실을 다지는 한편 하드웨어(전시관 주변 등)를 좀 더 트렌드에 맞게 꾸며나갈 계획이다. 라이트룸서울의 다음 전시는 톰 행크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협업한 ‘문 워커스’다. 지난해 12월 라이트룸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문 워커스’는 달 착륙과 미래라는 주제에 예술·과학·음악 등의 요소를 곁들인 영상이다. 런던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전시를 관객은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전시관 주변 시설도 확장한다. 이미 MZ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노티드도넛’과 같은 브랜드가 입점을 예고한 상황이다. 카페·레스토랑·정원·아트숍 등 다양한 공간을 1만 5000평 규모의 주변 부지에 입점시킬 계획이다. 도 대표는 “시장성은 결국 사업의 끝단에서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며 “보다 전문적인 몰입형 전시로 대중들이 순수 미술을 알게 하고 순수 미술에 참여하도록 해 미술 시장이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He is ···△1969년 서울 △뉴욕대 학사(스튜디오아트·서양미술사 복수전공) △프랫대 대학원 석사(서양미술사학) △1998년 아트바젤 참여 △2002년 두아트갤러리 론칭 △2007년 두아트베이징 설립 △2008년 두아트서울, 갤러리현대강남 설립 △2012년 갤러리현대 부사장 △2016년 갤러리현대 대표이사 △2019년 한국화랑협회 부회장 △2022년 에트나컴퍼니 설립 △2023년 라이트룸서울 론칭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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