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부처 우주 사업 총괄 못하는 우주항공청 ‘반쪽짜리’ 되나
과기정통부·산업부 사업만 이관
R&D 기능에만 집중한 우주항공청, 정책 일관 추진 방안도 마련해야
우주항공청 설립이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가운데 관할 업무에서 외교와 국방 관련 업무가 빠진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청사진이 공개됐는데 외교부, 국방부가 추진하는 우주 관련 사업들이 정부 우주사업을 총괄해야 하는 우주항공청의 업무 범위에서 제외된 것이다. 우주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도 우주항공청에서 빠졌다. 우주항공청 개청이 시시각각 다가오지만 ‘반쪽짜리 우주항공청’이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오는 5월 출범하는 우주항공청에 이관되는 조직·사업은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로 제한된다. 우주항공 분야의 다양한 사업을 맡고 있는 외교부, 국방부, 국토교통부는 우주항공청 이관 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구조로는 우주항공청의 본래 취지인 우주항공 분야 연구개발(R&D)·정책 콘트롤타워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세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3~4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보였던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사건”이라면서도 “협력과 소통이 중요한데, 지금 같은 형태는 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든 부처의 우주항공 기능을 우주항공청에 모아야 시너지가 난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우주항공 산업의 가장 큰 수요처인 국방 분야의 관련 업무가 우주항공청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가령 위성 기술은 상용 기술과 국방 기술에서 모두 활용된다는 점에서 일괄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 구조로는 상용 기술은 우주항공청이, 국방 기술은 국방부가 맡는 식으로 이원화된다.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은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주도하는 저궤도 통신위성, 군전용 정찰위성 사업에 우주항공청이 참여할 지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민간 기업들이 쏘아 올린 위성을 유사시에 국방부가 활용할 수도 있는 만큼 민간 산업과 기술이 참여해서 발전시키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주 분야를 연구하는 한 대학 교수는 “공무원 조직에서 이런 틀이 마련됐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결국 국내 우주 기술, 산업의 발전보다도 자기 부처의 사업을 손에 쥐고 성공시켜 실적을 인정받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방은 국방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가는 이 체계는 지난 20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우주기관들이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국방 업무를 표면상으로는 하지 않고 있어 자칫 국방 기능이 우주항공청에 들어갈 경우 국제협력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2019년 국방부 산하에 우주개발국(SDA)를 설립해 우주 영역에서 미국의 지배력과 우세를 유지하는 안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우주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간의 충돌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주항공청이 아니라면 별도의 국방 우주 분야의 전담기구가 필요하게 되는 문제가 남는다.
과기정통부는 순수 국방 목적을 제외한 ‘우주 안보’ 기능을 우주항공청이 수행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파견 형식의 인력 교류도 당장은 계획에 없다. 이재형 과기정통부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장은 “외교부, 국방부, 국토교통부에서 추후 요청이 오면 응할 예정”이라며 “이외에도 인력 교류, 임기제 공무원 제도를 활용해 인력을 확보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추후 우주항공청 사업 분야를 재조정하려면 소통 창구가 가장 중요하다”며 “사업 이관은 안되더라도 관련 인력을 확보해 소통 창구를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 분야도 향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항공우주국(NASA),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같은 해외 우주전담기관의 업무 파트너는 우주항공청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외교부의 우주외교 관련 기능 중 국제 협력 분야도 우주항공청에 이관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주항공청과 외교부가 따로 목소리를 낼 여지도 있다.
지금도 과기정통부가 우주 분야 주무부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외교부에 외교 권한이 있는 만큼 공통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과기정통부와 외교부는 각각 우주포럼을 개최했다. 외교부는 미 국무부와 ‘한미 우주포럼을 지난해 11월 6일부터 7일까지 개최했고, 다음날인 8일부터 9일까지는 과기정통부와 미 상무부의 ‘코리아 스페이스 포럼’이 열렸다.
당시 두 포럼은 우주동맹과 우주산업이라는 별개의 주제로 열렸다. 다만 우주항공청의 본래 취지인 우주 정책 총괄이라는 관점에서 외교부 사업이 이관되지 않은 점은 큰 제한점이라는 지적이다. 부처가 아닌 ‘청’ 단위의 우주항공청이 외교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 과기정통부 안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은 “우주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외교도 있으나 외교를 위해 우주 관련 현안을 의논해야 하는 경우도 최근 크게 늘고 있다”며 “다만 우주항공청과 외교부가 이런 업무 조정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주항공청의 설립과 동시에 국가 우주 거버넌스(민·관 공동 정책 관리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주항공청이 우주 분야 외교, 국방 업무를 총괄하지 못하면서 기존 국가우주위원회가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과정은 그대로 남는다. 국가우주위원회의 위원장이 대통령으로 격상되고 민간에서 부위원장을 맡게 된다. 간사는 우주항공청이 맡아 각 부처의 안건을 종합해 보고하는 방식으로 개편한다.
안 팀장은 “여전히 우주 정책의 핵심은 우주항공청보다는 상위 거버넌스인 우주위원회에 달려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은 우주위원회 구성이 어떻게 될지, 별도의 실무위원회를 만들지에 대한 문제가 핵심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간사 조직인 우주항공청이 다른 부처의 요구를 내실 있게 검토하려면 전문성 있는 조직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우주항공청의 R&D 기능에 집중하는 사이 정책 조직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단장은 “우주위원회 지원을 위한 ‘우주항공정책국’을 만들어 정책 개발 계획이 있다”면서도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문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도 고민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우주항공청 내부에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는 별도의 조직은 구상하지 않은 상태다. 이 단장은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은 맞다”며 “현재 우주정책 싱크탱크인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의 규모를 봤을 때 종합적인 정책 개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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