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새 장관 취임 뒤에도 출판계 홀대…“신뢰 회복 물꼬 터야”

양선아 기자 2024. 1. 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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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계획을 밝히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출판문화 발전과 국내 출판계의 국외 진출을 위해 정부가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를 통해 꾸준히 지원해오던 예산이 삭감된 데다 그마저도 집행이 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계 대표 행사인 서울국제도서전을 두고 지난해 벌어졌던 정부와 출협 사이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여파다. 출협은 지난 10월 취임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여지껏 묵묵부답이라고 밝혔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16일 오전 서울 중구 출협 4층 강당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출판 현안 관련 입장을 밝히고, 올해 사업 관련 계획도 발표했다. 윤 회장은 “정부는 2021~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에 7억7천만원을 지원했으나 올해 예산을 6억7천만원으로 삭감했고, 문체부는 지난해 진행된 서울국제도서전 관련 감사 및 수사를 핑계로 이마저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해외도서전의 주빈국 행사 관련 예산 10억원도 다른 곳에 전용해서 쓰겠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해외도서전 한국관 운영 관련 예산 5억5천만원, 한국도서 해외전파사업 예산 6천만원 등 그동안 출협에 지원했던 예산 23억원가량을 삭감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출판문화진흥을 위해 민간단체인 출협과 협력해왔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방향이 바뀌었다. 박보균 장관 시절인 지난해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에 대한 회계 처리를 문제삼으며 감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문체부는 출협 임원들에 대해 수사의뢰를 하고 출협은 문체부 담당 공무원에 대한 소송을 벌이는 등 갈등이 격화됐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박 장관이 해임되고 유인촌 장관이 새로 임명됐으나, 취임 뒤 4개월이 지나도록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장관 취임 직후 공문을 통해 면담 요청을 하고 비공식 통로를 통해 여러 차례 면담 요청을 했지만 묵묵부답”이라며 “거의 모든 분야와의 만남을 하면서 국내 최대 출판단체인 출협과는 만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문체부는 적극적인 갈등 해결보다는 아예 출협을 배제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체부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관련 수사가 진행중인 데다 감사원 감사에서 출협에 수익금을 재정산하라고 해 재정산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협에 예산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서울국제도저전 예산을 불용시키지는 않을 것이고 (출협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출판계를 지원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해외도서전 주빈국 참가 관련해 문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 “권역별, 시장별 특성과 한국 출판계의 진출상황 등을 고려해 문체부가 참가 여부와 국가 등을 결정해왔다”며 “올해는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파리 전역의 서점 등에서 한국출판을 소개하고 작가교류 행사를 진행해 한국출판의 유럽진출 기반을 다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사람들이 책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등 임원들이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계획을 밝히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출협은 정부 지원이 없더라도 서울국제도서전이나 해외도서전 주빈국 행사 등 예정된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회원사들과 기금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법인을 별도로 마련했고, 주빈국관도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오는 6월26일부터 30일까지 코엑스에서 ‘후이늠’이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후이늠’은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가 여행한 네 번째 나라의 이름으로, 이 나라에는 의심과 불신, 거짓말, 무절제, 권력, 전쟁 같은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동북아 지역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이 같은 주제를 잡았다고 출협 쪽은 밝혔다. 또 출협은 오는 11월29일부터 12월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제1회 부산국제어린이도서전을 부산시와 공동으로 개최한다. 출판계와 지역, 정치권의 협업으로 출범하는 부산국제어린이도서전은 볼로냐아동도서전에 비견할 수 있는 아동 도서와 교육(edu·에듀) 콘텐츠를 모두 아우르는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대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국제협력과 프로그램 개발 파트너로 참여한다.

정부와 출협의 계속된 갈등에 출판 전문가들은 정책 파트너인 정부와 출협, 한국출판문화진흥원 등이 계속 대립각만 세워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민간단체와 보조사업을 할 때는 서로 충분한 신뢰관계가 형성돼야 하는데 서로 고소를 남발하는 등 신뢰가 깨진 상태”라며 “서로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출판문화진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 대표는 또 “해외도서전 주빈국 관련 문제나 국제도서전 관련 행사는 국제적인 신뢰 관계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정부가 출판계의 대표적인 사업을 실행해온 출협의 노하우 등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출판산업 관계자는 “한국 출판에 전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세계적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관을 운영하는 것 등이 매우 중요한 일인데, 그동안 이를 닦아온 출협의 역량을 배제하면 크게 실기할 수 있다. 출판계 전체의 협력 없이 외주사 하나 선정해서 파리 서점들에서 행사를 여는 식으로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당장 예산 문제로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취소되어 국외 관계자들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문체부와 출협은 하루 빨리 갈등을 해소하고 출판문화 진흥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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