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약 없어 하루 4번 주사…의사도 손사래, 외면 받는 소아 당뇨병
먹는 약 없어 평생 주사 맞아야…'혈당과의 전쟁'
환우회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해달라" 호소
아동병원들 "저수가, 전공의 부족 해결 없이 안 돼"
#. 지난 9일 충남 태안군에서 일가족 3명이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성 A(45)씨와 여성 B(38)씨, 딸 C(7)양이었는데,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엔 '딸이 아파해서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자'는 다름 아닌 '1형 당뇨병'이었다.
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나오지 않아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질환이다.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된 게 원인인데, 진단받은 후부터 평생 인슐린 치료를 받아야 한다. 먹는 약으로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2형 당뇨병과 달리, 1형 당뇨병은 먹는 약도 쓸 수 없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놔야 한다. 인슐린이 분비는 되지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2형 당뇨병 대부분이 성인인 것과 달리,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당뇨병의 90%가 1형 당뇨병이다. '소아 당뇨병'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2022년 1형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19세 미만 환자는 1만4480명으로 2018년(1만1473명)보다 4년 새 26% 이상 증가했다.
이런 1형 당뇨병 환자에겐 하루하루가 '혈당과의 전쟁'이다. 하루에도 4~7번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뽑고 혈당을 재야 한다. 하루 4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놔 고혈당에서 혈당을 떨어뜨렸다가도, 혈당이 확 떨어져 저혈당 상태에 달하면 당분을 빨리 섭취해 혈당을 높여야 한다.
그나마 최근엔 피를 매번 뽑을 필요 없이 혈당을 24시간 측정할 수 있는 연속혈당측정기가 보편화해 채혈 방식은 크게 개선됐다. 정부는 2019년 1월부터 건강보험으로 연속혈당측정기 비용의 일부를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1형 당뇨병 환자의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고, 인슐린 자동 주입기 사용 비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을 설명·관리해줄 의료기관과 인력이 모두 부족하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실제로 1형 당뇨병 환자들은 관리기기 비용 부담만 줄인다고 환자와 가족의 어려움이 크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뉴스1에 따르면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지난 15일 세종 보람동에서 개최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부모 손으로 직접 투여한 인슐린 주사에 저혈당과 고혈당을 오가며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라며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산정특례)으로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형 당뇨병이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되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인슐린 주사·관리기기 사용법·영양·심리상담·운동 교육 등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1형 당뇨병 환자는 단순히 기기 사용법과 주사법뿐 아니라 인슐린 작용 시간, 음식별 탄수화물(당분) 함량 등에 대해 숙지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환자가 맞아야 하는 인슐린양을 계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영양·주사·심리·운동 등 A부터 Z까지 모든 것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데 이런 교육팀을 꾸릴 수 있는 건 상급종합병원밖에 없다"면서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위주의 환자만 봐야 하는데 1형 당뇨병은 아직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결국 갈 데가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부산·울산·경남·원 지역의 여러 상급종합병원 당뇨병 전문의들이 그만두면서 많은 환자가 진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게 환우회 측의 호소다.
영남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문준성(대한당뇨병학회 재무이사)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 난치 질환을 많이 보게 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지만 1형 당뇨병은 아직 인정되지 않았다"며 "대한당뇨병학회 교수들은 오래전부터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는 '보험 급여를 충분히 적용하고 있으므로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120개 아동병원 단체인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소아 당뇨병 환자가 18세가 될 때까지만이라도 진료비 지원을 포함,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용재(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소아 당뇨병은 확진되더라도 진료만 잘 받으면 충분히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데도 한국에서는 제도적 결함 탓에 부모는 부모대로, 소아 환자는 환자대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용재 회장은 "병원에서 소아 당뇨병 환자를 진료하고 제대로 설명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데, 환자를 제대로 보는 순간 대기 환자가 밀릴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한 민원을 한 번이라도 당해 보면 (의료진이) 감히 소아 당뇨병 환자를 직접 볼 생각은 '강심장'이 아니면 못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비현실적인 저수가는 병원이 소아 당뇨병 진료를 기피하는 요인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최 회장은 "전공의가 부족하면 교수들이 하루 4번씩 혈당 콜을 직접 받아야 하고, 환자가 내원하면 집중 교육도 해야 한다"면서도 "혈당 기록지는 환자가 매달 내원할 때마다 책 한 권 분량이 나올 정도로 많은데 의사가 이 기록지를 다 읽어보고 개별적인 용량 변경과 대처 방법을 처방하는데 어떻게 단돈 1만원(진료수가)으로 다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소아 당뇨병 환자가 의료계의 기피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태안 일가족 사망에 이례적으로 장관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당초 오는 3월 말 시행 예정이던 소아 당뇨병 관리기기 부담 완화 정책을 한 달 앞당겨 다음 달 말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요양비를 요양급여로 전환하거나 소아 당뇨병을 중증질환으로 인정해 산정 특례를 적용하는 건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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