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에미상도 싹쓸이…가장 한국적인 이야기 통했다

남지은 기자 2024. 1. 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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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년 전이었다면 '성난 사람들'이 받아들여지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젠 다양성 개념이 생겼고 사람들은 한국인의 경험과 정체성을 듣고 싶어 한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성난 사람들'(넷플릭스) 공개 직후인 지난해 8월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특별 연사로 한국을 찾은 이성진 감독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가 전세계에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에미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성진 감독은 "처음 엘에이(LA)에 왔을 때 돈이 너무 없어서 은행에 1달러를 저금하러 갔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그때만 해도 제가 에미상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감격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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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감독∙남녀 주연상 등 8관왕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주연 스티븐 연(왼쪽)과 연출자 이성진 감독(오른쪽)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5일(현지시각) 열린 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각각 남우주연상과 감독∙작가상을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APF 연합뉴스.

“5~10년 전이었다면 ‘성난 사람들’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다양성 개념이 생겼고 사람들은 한국인의 경험과 정체성을 듣고 싶어 한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성난 사람들’(넷플릭스) 공개 직후인 지난해 8월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특별 연사로 한국을 찾은 이성진 감독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한국적인 정서가 전세계에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다섯달이 지난 지금 ‘성난 사람들’이 2024년 미국 내 주요 티브이(TV)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각) 81회 골든글로브에서 티브이 시리즈 및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스티븐 연)과 여우주연상(앨리 웡), 작품상을 받은 데 이어, 15일 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도 같은 부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이성진), 작가상(이성진), 남녀주연상 등 총 8관왕을 차지했다. 하루 앞서 열린 29회 크리틱스 초이스에서도 남녀주연상, 작품상, 여우조연상(마리아 벨로)을 받으며 ‘성난 사람들’은 평단의 평가와 대중의 찬사를 모두 끌어낸 명작으로 기록됐다.

이성진 감독은 에미상을 받은 뒤 “처음 엘에이(LA)에 왔을 때 돈이 너무 없어서 은행에 1달러를 저금하러 갔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그때만 해도 제가 에미상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어 “이 작품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다른 작가들과 줌으로 소통하며 대본을 완성했다”며 “어려운 시기를 같이 극복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건넸다.

‘성난 사람들’은 운전 도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한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의 갈등이 극단적인 싸움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은 10부작 블랙 코미디다. 지난해 4월 공개된 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고 한국계 미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민 1.5세인 이성진 감독은 “운전 중에 백인 남성이 고함을 지르며 경적을 울려대자 감정이 폭발해 난폭 운전하며 따라갔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그 순간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75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을 차지한 ‘성난 사람들’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환하게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성난 사람들’의 수상 행진은 ‘한국’이라는 열쇳말이 더는 세계무대에서 이질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류로 케이(K) 콘텐츠가 주목받고 한국계 배우들이 현지에서 활약한 지는 오래됐지만 메이저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기는 어려웠다. 2019년 한국계 미국인 샌드라 오가 76회 골든글로브에서 한국계 미국인 처음으로 티브이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오징어 게임’이 2022년 74회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영향력을 키워온 것이 ‘성난 사람들’에까지 이르렀다.

김영대 문화평론가는 에미상 티브이(TV) 중계에서 “한국계 미국인 배우를 대표하는 스티브 연이 메이저 시상식에서 수상한 것은 한국이 부각되는 중요한 순간”이라며 “한류 문화와 한국계 미국인의 활약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이제 하나의 흐름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2020년 영화 ‘미나리’에서도 이민자 1세로 나왔다. 그는 이 작품으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올해는 이민자 2세로 나온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을 받았다.

특히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아시아계 이민자 이야기가 미국 주류사회에서 흥미를 느끼는 소재로 부각되며 제2의 ‘성난 사람들’을 기대하게 한다. ‘성난 사람들’은 이민자들의 정체성 고민에서 나아가 그들이 미국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는 삶에 분노라는 소재를 투영했다. 베트남인 어머니와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앨리 웡이 연기하는 에이미는 성공한 사업가다. 아시아 여성으로서 차별에 맞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고 있다. 스티븐 연이 연기하는 대니도 가부장적인 한국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가장으로서 무게를 갖고 산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사소한 충돌로 분노를 일으키며 발생하는 서사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배려와 환대의 정서를 상실하고 생존 본능만 남은 자본주의형 인간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스티브 연은 2018년 영화 ‘버닝’ 개봉 뒤 “미국에서 동양인 배우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고 했다. 불과 몇 년 사이 동양인,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 작가로 데뷔 이후 줄곧 소니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던 이성진 감독은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이후 한국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이름 이성진에 자부심을 느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이성진 감독은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시아계 작가가 소수여서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내 정체성을 피력하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은 보도자료를 내어 “‘성난 사람들’은 한국인만 가질 수 있는 문화적 감성과 코드가 있다. 이번 수상이 다양한 국적과 언어를 쓰는 콘텐츠 창작자들을 독려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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