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상 8관왕 ‘성난 사람들’…이성진 감독 “잔고 -63센트였는데, 트로피 들 줄 몰라”
작품상·감독상·남녀 주연상 등 8관왕
연기상 스티븐 연 <미나리> 이어 한국계 이주민 역
이민자로서 감독 경험 투영된 작품 미나리>
한국계 감독과 주연배우가 활약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포함해 8관왕을 수상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이성진 감독은 미니시리즈·TV영화(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작가상의 수상자가 됐다.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처음 LA에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63센트였다. 그걸 메꾸러 가서 ‘1달러를 저금하겠다’고 하니까 ‘정말 1달러 저금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더라”며 “그땐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고, 제가 이런 것(트로피)을 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가끔 느끼기에 세상은 사람들을 갈라놓으려는 것 같다. 이 시상식에서조차 누군가는 트로피를 가져가고 누구는 아니다”라며 “이런 세상에 살다 보면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고 사랑받을 가능성조차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성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조건 없이 사랑해 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 서 보니까 정말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것이 새삼 와닿는다”며 배우들과 넷플릭스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이 감독은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2008년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 각본가로 데뷔했다. 이후 <아웃소스드>(2010), <실리콘 밸리>(2015), <데이브>(2021) 등 TV 시리즈의 연출과 각본을 담당했다.
스티븐 연은 남우주연상 경쟁자였던 <블랙 버드>의 테런 애저턴, <다머>의 에반 피터스, <위어드>의 대니얼 래드클리프 등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티븐 연은 수상 소감에서 “솔직히 대니로서 살아가기 힘든 날들도 있었다. 대니를 멋대로 판단하고 조롱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며 “그런데 어느 날 앤드류 쿠퍼(포토그래퍼)가 내게 ‘대니를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편견과 수치심은 아주 외로운 것이지만, 공감과 은혜는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만든다는 점을 가르쳐준 (극중 인물) 대니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스티븐 연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스티븐 연은 상반기 개봉 예정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에도 출연한다.
중국·베트남계 배우 앨리 웡도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성난 사람들>은 이외에도 캐스팅상, 의상상, 편집상을 수상해 후보에 오른 11개 부문 가운데 남녀 조연상과 음악상을 제외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성난 사람들>은 운전 도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한 주인공 대니 조(스티븐 연)와 에이미 라우(앨리 웡)의 갈등이 극단적인 싸움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은 10부작 블랙 코미디다. 대니는 한국계 노동자로 극중 가족이나 친척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거나 한인 교회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민자로서 감독의 경험이 투영됐다. 이성진 감독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2023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특별 세션에 참여해 “(미국인들은) 한국의 정체성과 진정 어린 경험을 듣고 싶어 하는데,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멋진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며 “한국인인 우리가 우리들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한류의 성공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독 외에 주·조연 출연자에도 한국계가 다수 포함돼 주목받았다.
드라마는 지난해 4월 공개된 후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지난 7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TV 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주연상(앨리 웡) 등 3관왕을 거머쥐었다. 14일에는 크리틱스초이스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작품상, 남여 주연상, 여우조연상(마리아 벨로) 4관왕을 차지했다.
에미상은 TV 시리즈 부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며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이번 시상식은 지난해 9월 18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할리우드 파업의 영향으로 연기됐다. 2022년 9월 열린 제74회 시상식에선 <오징어 게임>이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받았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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