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동물 늑대…외로워도 슬퍼도 너는 안 울어

김지숙 기자 2024. 1. 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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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③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하며 고도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동물로 영역 표시, 의사소통, 감정 표현의 목적으로 울음소리(하울링)를 낸다. 픽사베이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연재 2회 만에 독자님의 반가운 질문이 접수됐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독자 전나원님의 질문입니다. 최근 동물 그림책을 보다가 늑대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책에 ‘무리에서 쫓겨난 늑대는 더이상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외톨이 늑대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A. 늑대의 울부짖음은 초원에서는 10㎞ 밖까지 전달됩니다. 주로 이웃 무리에게 자신의 무리를 알리고, 멀리 사냥 나간 동료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됩니다. 늑대의 울음에는 무리 내 개체 수, 결속력 등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철저한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의 특성상, 홀로 남은 늑대는 다른 무리에게 공격당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울음에 답하기보다 침묵을 택하게 됩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양치기들이 해 질 무렵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늑대들의 정체가 단번에 드러났을지도 모릅니다. 늑대들은 해 질 무렵 그리고 해 뜰 무렵, 무리를 과시하듯 단체로 특유의 울음소리(하울링·Howling)를 내거든요.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하며 고도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동물로 영역 표시, 의사소통, 감정 표현의 목적으로 울음소리(하울링)를 낸다. 픽사베이

먼저 늑대가 왜 이렇게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는지부터 알아볼까요.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하며, 고도로 체계화된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주로 암·수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약 6~10마리로 무리를 이뤄 생활하는데, 부모 늑대와 그 새끼들로 이뤄진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족이 무리를 이루다 보니 서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끈끈한 결속력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늑대들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울부짖음이지요.

늑대는 누구와 무엇을 소통할까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야생동물학자 더그 스미스는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늑대가 울부짖은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영역동물인 늑대가 자신의 영역을 이웃 무리에게 알리고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의미에서 운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멀리 사냥 나간 동료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울고요. 세 번째 이유는 무리 내 감정 교류라는 ‘사회적 목적’을 띈다고 합니다. 2013년 오스트리아 빈대학 연구에서는 늑대가 특별히 가까운 사이일 때, 서로에게 더 크게 많이 울부짖는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거든요. 그러니 울부짖음은 꼭 경계나 길 찾기 등 실용적 목적뿐 아니라 감정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늑대는 부모 늑대가 무리의 리더가 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새끼들로 한 무리를 이루는 일이 많다. 클립아트코리아

그럼, 반대로 울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야생동물전문가 최현명 작가는 그 이유를 늑대 특유의 철저하고 체계적인 무리 생활과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최 작가는 “야생 늑대에게 무리를 유지하고 영역을 지키는 일은 생존과 직결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조직적인 단체 사냥을 하는 늑대들은 무리의 규모가 중요한데, 단체 하울링은 무리에 몇 마리가 있는지 추측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체 수가 많은 무리라면 이웃 무리를 위협하기 위해 울부짖겠지만, 규모가 작거나 혼자인 늑대는 울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홀로 있는 늑대는 생존에 위협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늑대는 한해 한 번 짝짓기를 하는데요, 임신이 되면 한 번에 7~8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생후 6개월~2년까지는 청소년기로 부모 무리에서 함께 생활하지만, 이후에는 독립하게 되죠. 이런 독립 시기에는 기존 무리를 떠나 새 무리에 합류하거나 짝을 만나 자신만의 무리를 꾸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늑대 무리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잡아먹힌다고 합니다.

이때 홀로 남은 늑대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울부짖음을 멈춘다는 것이 최 작가의 설명입니다. 최 작가는 “반드시 이때는 울고, 이런 때는 울지 않는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늑대들은 무리가 클수록, 강한 무리일수록 울부짖음의 응답률이 높고 홀로 남은 늑대는 침묵으로 거대 무리를 피하는 생존 전략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덫에 걸린 블랑카(왼쪽)와 짝이 죽자 상심한 로보(오른쪽). 어니스트 시튼 제공

이렇게 보면 ‘늑대 사회’는 비정해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무리를 이루면 어느 동물보다 정이 넘친다고 합니다. 음흉하고 야비하다는 기존 이미지와 달리 평생 일부일처를 유지하며, 수컷도 육아에 헌신적으로 참여합니다. 무리의 대장도 힘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 많은 현명한 늑대를 추대합니다. “늑대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동물”이라는 게 최 작가 주장입니다.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시튼의 ‘내가 아는 야생동물’(1898년)에 등장하는 ‘늑대왕 로보’는 늑대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로보는 19세기 뉴멕시코주에서 단 다섯 마리의 무리만을 이끌고 가축 수천 마리를 해쳐 악명을 떨치던 늑대입니다. 너무 영리해서 사람이 놓은 덫이나 독 묻은 먹이를 매번 우습게 피했는데요, 로보를 덫에 걸려 죽게 한 것이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로보를 포획하는 데 계속 실패하자 사람들이 그의 짝이었던 암컷 ‘블랑카’를 덫에 걸리게 한 것이죠. 로보는 자신의 짝이 죽은 것을 알자 몹시 흥분한 모습을 보이다가 허무하게 덫에 걸리고 맙니다. 그리고 먹이도 물도 거부하다 이틀 만에 죽게 됩니다.

도움 주신 최현명 작가는
국내에선 절멸한 늑대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몽골, 타지키스탄, 중국 네이멍구 등 동북아시아를 여행한 뒤 지난 2019년 책 ‘늑대가 온다’를 출간했습니다. 포유류 전문가로 꼽힙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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