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나 사모펀드 활용한 선제적 구조조정 시급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사후 처리 위주의 기업 구조조정 제도로는 한계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우리나라에는 제도적인 기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이 있다. 채권단이 100% 동의해야만 하는 채권단 자율협약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법정관리는 법원의 감독 아래 채권자와 주주 및 이해관계인의 법률 관계를 조정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제도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에 따라 법원이 채권금융기관과 일반 상거래의 채권을 포함한 모든 채무를 동결하고 관리인을 지정한다. 관리인의 행위는 법원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되며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정한 사항은 법원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유효하다.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의 차이
때문에 법정관리를 통한 기업 회생 절차와 파산 절차는 다르다. 파산제도는 파산채무자 재산의 처분과 채권자들에 대한 공평한 배당을 목적으로 한다. 법정관리는 기업 회생이 목적이어서 원칙적으로 기업이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가 사업을 청산할 때의 가치보다 크다고 인정되는 때로 한정한다.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은 물론이고 이해관계자들에게도 도움이 돼야 한다. 법정관리의 단점이라면 법에서 정한 엄격한 절차에 따라 다수 관계자의 이해를 조정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법정관리를 통한 회생 절차는 10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와 비교해 워크아웃 절차는 평균적으로 3.5년 걸린다. 기업개선작업이라고도 부르는 '워크아웃'은 '기업 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른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제도다. 채권단의 75%가 동의하면 가능하다. 워크아웃 개시가 결정되면 채권단은 워크아웃 기업과 경영정상화계획이행 약정을 체결한다. 이후 보유 채권에 대한 상환기일 연장, 원리금 감면, 대출금 출자전환 등의 방법으로 재무 상태를 개선해 준다. 물론 신규 대출도 가능하다.
가장 두드러진 장점은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동안 금융채권만 동결되고 거래업체의 상거래 채권과 채무는 정상적으로 이행되기 때문에 기업 활동에 대한 부정적 영향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정관리에 의한 기업 회생 절차는 채무 탕감 등을 통한 채무 재조정을 강제하기 때문에 더 강력한 방안이기는 하지만 일반 상거래 채권까지 동결돼 파급효과가 크고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정상화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지기도 한다.
워크아웃 제도는 외환위기로 연쇄 부도에 몰린 기업들의 신속한 회생을 위해 2001년 도입됐다. 채권단이 배임 행위를 추궁당하거나 실무자가 징계당할 각오를 하지 않고도 부실해진 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 기능이 크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워크아웃 제도는 '일몰제'라는 조건으로 도입됐고 일몰 시점이 왔을 때마다 개정을 거듭해 왔다. 최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도 지난해 국회에서 기업 구조조정촉진법 시한이 연장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도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논의 과정에서도 법원행정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연장을 반대했다. 채권단이 절차의 주도권을 갖도록 법으로 강제력을 부여해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상거래 채권자 등 일반 채권자는 제외돼 평등성을 손상하고 채무조정에 반대하는 채권자라고 해도 채권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의결사항을 이행할 의무를 강제적으로 지는 것도 사적 자치 침해의 소지가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해외 본사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무래도 기업의 유지와 성장보다는 채권 회수에만 중점을 두고 조정이 진행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태영건설 같은 대기업의 경우 흔히 국책은행이 중심이 되고 금융 당국 개입이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채권은행 주도의 워크아웃 성공률은 26%에 불과했다. 법정관리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워크아웃이 법정관리보다 더 나은 구조조정 수단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일본 구조조정 성공사례 주목해야
사실 기업 구조조정의 수단으로서 법정관리도 워크아웃도 아쉬운 점이 많다. 부실이 발생한 후 사후 처리 위주로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되는 지금의 상황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당장은 태영건설이 문제고 부동산 PF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구조조정이 필요한 한계기업은 급증하고 있다. 2022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비금융 영리법인 중 42.3%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했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늦어지면 시중 자금이 부실기업에 묶여 전반적인 경제의 비효율성이 증가한다. 또 기업 전반의 신용 위험에 대한 불안 심리로 사정이 나쁘지 않은 기업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기 전에 구조조정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의 핵심은 기업의 회생 또는 파산 가능성을 빨리 판단하는 것과 회생 가능 기업에 대해 적절한 자금 지원을 신속하게 결정하는 일이다. 위기를 맞아야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지금의 제도로는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기업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 채무 구조조정 위주로만 진행되면 기업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경쟁력 확보에는 소홀해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구조조정 시스템은 더 치밀해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방식의 구조조정 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칙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 아래 이해관계자 간 책임을 적절하게 분담하면서 도덕적 해이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권자나 채무자가 아닌 중립적인 제3자가 기업을 진단하고 재생 가능성을 판단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정상 기업이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먼저 구조조정에 나서는 경우 법적으로 지원하는 일본 방식도 있다. 시장을 활용하는 상시 기업 구조조정은 인수합병(M&A) 활성화를 통해 촉진할 수 있다.
특히 사모펀드에 의한 구조조정 활성화는 시장을 통한 효율적 구조조정 방법이다. 혁신이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배경에도 끊임없이 이뤄지는 구조조정이 있고 활발한 M&A 시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가 되는 기촉법의 일몰 기한은 2026년으로 잡혀 있다. 시한이 가까워지면 다시 기업 구조조정의 효율적인 수단을 놓고 논란이 일어날 것이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한계기업은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고 구조조정은 급하다. 더 효율적인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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