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물에 이중주차면 재건축 직행…안전진단 탈락 절대 없을 이유 [박일한의 住土피아]

2024. 1. 1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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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안전진단 유명무실법 곧 공개
‘구조안전성’ 비중 대폭 낮추고
‘주거환경’, ‘설비노후도’ 대폭 높일 듯
“안전진단은 사실상 요식행위될 것”

[헤럴드경제=박일한 선임기자] 정부가 지난 10일 30년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사업을 허용하겠다고 하자 논란이 뜨겁다.

전국 아파트 1232만 채 중 준공된 지 30년 넘은 단지는 21%인 262만 가구나 된다. 이들 중 과연 얼마나 재건축을 착수할 수 있을지, 침체된 매매시장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국토교통부는 2월 관련 내용이 담긴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야당에서 반대할 게 뻔해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총선을 앞두고 야당도 찬성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단 짚을 건 준공 30년 된 단지가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안전진단이 폐지된다는 건 아니다. 안전진단 없이 사업을 착수하되, 안전진단 시기를 ‘사업인가’ 전까지 미뤄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재건축 사업에서 안전진단은 사업 추진을 위해 가장 먼저 통과 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안전진단을 거친 후에야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추진위 구성→조합신청→사업계획인가→관리처분→착공’의 순서로 재건축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론 안전진단 없이 준공 후 30년 지난 단지는 일단 재건축추진위를 구성해 조합설립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안전진단은 사업계획인가 신청 전까지만 받으면 된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번 간소화로 재건축 사업이 3년이상 단축되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에 대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바라본 노원·도봉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조합원들의 강력한 의지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했는데, 사업계획인가 직전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이런 비유를 들었다. “대학교에 일단 들여보내주고 3학년까진 입학시험에 합격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등록금도 내고 열심히 학과 과정을 이수했는데, 3학년이 돼서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란 말인가?”

정부는 공공성·사업성이 있는 재건축의 경우, 조합설립 전까지 초기사업비 50억원을 기금으로 저리 지원하고, 사업인가 과정에도 주택보증공사(HUG) 보증을 통해 추가로 50억원을 더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정부가 최대 100억원까지 지원한 재건축 사업인데,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걱정은 기우가 아닐까 싶다. 정부의 진짜 규제완화의 핵심은 안전진단을 사업인가 직전까지 늦춰주는 게 아니라,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0일 재건축 규제 계획을 발표하면서 “노후도가 높은 아파트는 안전진단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안전진단 기준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하기 위한 평가 항목이 명시돼 있다. 건축물의 ‘구조안전성’, ‘주거환경’, ‘설비 노후도’, ‘비용편익’ 항목이 그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항목에서 평가 비중은 정부의 재건축 사업에 대한 판단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재건축을 적극 장려하지 않는 정부는 안전진단 기준에서 구조안정성 비중을 높였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안전진단에서 구조안정성 평가 비중을 전체의 50%까지 상향시켰다. 이렇게 되면 재건축을 원하는 단지에 주차장이 부족하고 녹물이 나와도 무너질 위험이 없으면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웠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선 구조안전성 비중을 20%까지 낮추고 주차장 시설 같은 ‘주거환경’(40%)과 ‘설비 노후도’(30%) 비중을 대폭 높였다. 무너질 위험이 없어도 주차장이 부족하고, 설비가 낡으면 안전진단을 통과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도 박근혜 정부처럼 안전진단 기준에서 주거환경이나 설비 노후도 비중을 대폭 높일 것으로 보인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안전진단 기준으로 과거에는 콘크리트가 단단한지 등 집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행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 주거 공간인지를 보는 게 척도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안전진단 평가항목에서 주거환경, 설비 노후도 비중을 높이고 구조안전성을 낮추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안전진단은 사실상 통과의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조안전성엔 문제가 없지만 주차장 부족 등으로 주민들이 불편하면 안전진단 절차는 쉽게 통과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진짜 재건축 규제완화의 핵심은 이달 내 발표할 계획인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방안’이 될 것이란 이야기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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