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넘던 종부세, 이번엔 1200만원 냈어요”…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까닭 [매경포럼]
종부세를 포함한 세제 개편안이 매년 나오다 보니 잘 숙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또 정부 정책이 중도에 폐기되거나 반대로 되살아나서 골탕먹기 일쑤다. 정권에 따라 세제나 정책이 바뀔 순 있지만 고무줄처럼 진폭이 큰 게 문제다. 2022년 종부세 대상자가 119만5000명에서 지난해 41만2000명으로 3분의 1 가량 준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아파트 값 잡겠다며 부동산 세제를 즉흥적으로 바꿔 누더기로 만들었다. 헌법에 명시돼있는 신성한 ‘납세 의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세금 체계를 마구 바꿨다. 기억나는 고약한 개편 중 하나는 부동산 증여를 막고자 뚝딱해서 증여 취득세율을 높여놓은 것이다. 2020년 7·10 대책은 다주택자 취득세율과 종부세율을 최대 12%, 6%까지 높이고 양도세 중과 등을 담았다. 발표 직후 세금 부담을 피해 자녀 증여가 늘 것으로 예상되자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즉시 움직였다. 나흘 만에 조정대상지역에서 3억원 이상 주택 증여 시 취득세율을 기존 3.5%에서 12%로 올리는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호떡집에 불나듯 밀어붙인 것이다. 3배 이상 갑자기 높아진 증여취득세는 정상적인 증여까지 막는 ‘국가 폭력’과 다름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6∼2020년 G20 각국의 경제정책 불안정성 정도를 측정한 결과, 한국은 당시 브렉시트(Brexit) 협상을 벌이던 영국 다음으로 불안정성이 가장 높았다. 한국의 불안정성 지수는 43.7로 독일(33.8) 일본(33.7) 중국(28.9) 미국(28.9) 프랑스(22.2) 등에 비해 크게 높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는 국가경쟁력 평가(2019) 항목 중 하나인 ‘정부 정책 안정성’ 순위는 141개국 가운데 중간 아래인 76위에 그쳤다.
현 정부도 정책 예측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면서 더 그렇다. 지난 10월 국제유가 상승에 유류세 인하를 3개월 연장했다가 다시 올해 2월 말까지로 다시 늘어났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장 싸진 기름값이 좋겠지만 세수 부족 뿐만 아니라 또 ‘정부가 또 내려주겠지’ 하는 기대를 계속 키울 수 있다. 총선용 기업인 달래기를 위해서인지 작년 말 종료될 예정이던 임시투자세액 공제도 1년 더 연장됐다.
정부는 기존 약속을 깨고 공매도 금지와 대주주 요건 완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도 폐지키로 했다. 금투세는 유예를 거쳐 2025년 시행하려 했다가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 말 한마디에 폐지로 가게 됐다. 철도나 공항 건설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은 운만 좋으면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다. 교육 분야도 교과과정이나 수능제도 개편이 잦아 수험생들은 늘 불안하다.
부동산 정책과 세제는 여전히 조변석개(朝變夕改)다. 정부는 준공 30년 넘은 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한데 이어 얼마 전에는 안전진단조차 필요없도록 했다. 불필요한 규제 혁파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 어렵게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 주민들로선 황당한 일이다. 기다리다 보면 정부가 맘이 바뀌어 내게도 그런 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를 부풀려놓을 수 있다. 특히 성급하게 정책을 발표해놓고 후속조치가 없으면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정책 신뢰는 하락한다. 지난해 1월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가 발표됐지만 주택법 개정안 통과는 요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책 예측성과 일관성이 떨어지면 기업과 가계는 장기 계획을 갖고 합리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어떤 제도가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경제주체는 행동을 망설이게 되니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유연한 정책 운용은 필요하나 정부 신뢰를 깍아먹을 정도가 돼서는 안된다. 정책 예측성 제고야말로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올 열쇠다. 또 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국민을 과도하게 괴롭힐 만한 세제나 정책 개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팍팍한데 잦은 정책 변경으로 국민에게 또다른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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