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20만원? 따따블이면 80만원!…이게 맞나요 [기자수첩]

고득관 매경닷컴 기자(kdk@mk.co.kr) 2024. 1.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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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6일.

공모가를 20만원으로 가정하면 최소 100만원은 있어야 청약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마지막 공모주였던 DS단석도 공모가가 10만원이었다.

예를 들어 블루엠텍은 공모가가 1만9000원, 최소 50주 청약이어서 계좌당 47만5000원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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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출처 : 연합뉴스]
2020년 10월 6일.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의 IPO 공모주 청약이 마감되자 국내 주식 커뮤니티들은 난리가 났다. 58조원이 몰리는 흥행 탓에 1억원을 넣은 공모주 투자자들도 단 2주를 받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경쟁률이 가장 낮았던 증권사 창구에서도 최소 2000만원 이상 돈을 넣어야 1주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라떼는’ 같은 소리가 됐다. 바로 이듬해인 2021년부터 공모주 중 최소 절반을 계좌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는 균등배정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최소청약 조건만 맞춰 몇만원 정도의 돈을 넣으면 치킨값 정도는 벌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균등배정은 최근 몇년새 금융당국의 증시 관련 정책 가운데 가장 잘한 일로 평가받는다. 증시의 저변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주식은 어렵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그래도 해볼만 하겠다’며 관심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균등배정제도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공모주들이 등장하고 있다. 화장품과 미용기기를 생산·판매하는 에이피알은 내달 1~2일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에서 공모 청약을 진행한다. 공모가 희망범위는 무려 14만7000원에서 20만원이다. 공모가를 20만원으로 가정하면 최소 100만원은 있어야 청약에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마지막 공모주였던 DS단석도 공모가가 10만원이었다. 청약에 들어가려면 50만원이 필요했다. 이 공모가를 두고도 너무 높지 않냐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한달 반 만에 20만원짜리 공모주가 나오는 것이다.

20만원이 얼마나 비싼 가격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주당 가격이 20만원을 넘는 곳은 전체 상장종목 951개 중 3.5%인 33곳 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3년 사이에 에이피알보다 더 높은 공모가로 상장한 곳은 크래프톤(49만8000원), LG에너지솔루션(30만원) 두 곳뿐이다. 두 회사 모두 에이피알보다 기업 규모가 수십배 더 크다.

공모가를 높게 잡았을 때 생기는 또다른 문제는 균등배정 몫이 너무 적어진다는 것이다. 기업가치는 그대로인데 주당 가격이 높아지면 주식수가 줄어든다. 에이피알의 IPO에서는 균등으로 4만7375~5만6850주가 배정됐다. 턱없이 적은 숫자다. DS단석도 균등배정 주식수가 15만2500주였다.

지난달 공모 청약을 진행한 공모주 6곳에 평균 33만7000명이 참여했다. 이 정도 숫자의 청약자가 에이피알 청약에 모이면 7명 중 1명만 균등배정에서 당첨되고 나머지 6명은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말 그대로 복불복이다.

사실 공모가는 놔두고 최소청약주수를 올리는 게 최근의 경향이었다. 균등배정 제도 시행 이전이나 직후에는 최소청약주수 10주가 보통이었다. 이제는 50주가 뉴노멀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청약을 받은 6개 공모주 중 절반인 3곳의 최소청약주수가 50주였다. 예를 들어 블루엠텍은 공모가가 1만9000원, 최소 50주 청약이어서 계좌당 47만5000원이 필요했다.

주관 증권사들도 나름 고민이 있긴 하다. 소액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달려들다보니 전산 비용이 부담스럽다. 지금도 인기가 좋은 공모주들이 상장하는 날에는 주관 증권사 HTS가 개장 직후 먹통이 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가격표를 고치거나 묶음상품으로 팔아서 푼돈 고객들을 돌려보내야 겠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증시 활성화라는 결승선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역주행은 곤란하다. 맨처음 이야기한 빅히트는 25만3000명이 평균 2억3200만원어치의 청약을 넣었다. 그런데도 4만명은 주식을 1주도 받지 못했다. 4년이 지난, 오늘의 공모주 시장도 ‘라떼는’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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